「전국구」 당적변경(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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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국구로 좀 끼자』라는 말은 보통 일정한 기여없이 거저 먹자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과는 달리 전국구 출신은 힘든 선거운동을 직접 하는게 아니라 소속정당 덕분에 금배지를 달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만큼 전국구 의원은 그 당의 신세를 톡톡히 지는 셈이고 당과의 인연과 의리는 더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전국구 의원이 뚜렷한 명분없이 소속정당을 떠나 다른 당에 들어갈 때 심한 배반감이 느껴지는건 당연하다. 더구나 여야로 갈려 서로 싸우거나 선거전 때 격렬한 공방을 벌인 상대당에 어느날 갑자기 들어간다면 배반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얌체의원에겐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리가 진작부터 높았다. 이번에 민자당이 과감한 선거개혁법안을 마련하면서 전국구 의원이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토록 명문화한 것은 공감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민자당이 정치도의상 용납하기 어려운 이런 일을 스스로 꾸준히 조장해왔다는 점이다. 민자당은 안정의석 확보라는 이유로 벌써 세사람째 국민당 전국구 출신을 받아들였다. 국민당이 비록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탈당해 무소속이 된 의원을 입당시켰다지만 법에 명문규정까지 두려는 스스로의 원칙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더욱이 지난 대통령선거전을 생각하면 정치인들의 사고방식은 상식적으로는 정말 이해가 안된다. 당시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는 김영삼후보에 대해 격렬한 공격을 하면서 극언·독언도 서슴지 않았고 지금은 민자당원이 된 국민당 의원들은 그 때마다 박수를 쳤던게 아닌가.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그들이 민자당에 들어가기도,민자당이 받아들이기도 어려울성 싶은데 들어가고 받아들이고 하는 것을 보면 역시 정치인이란 통이 큰 모양이다. 민자당의 이런 관대한(?) 자세로 미뤄보면 장차 정주영씨의 아들인 무소속 정몽준의원의 입당까지 실현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정가에 떠돈다고 한다.
다만 한가지 궁금한 것은 앞으로 탈당 전국구 의원의 의원직 박탈을 규정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이당 저당 옮겨다닌 전국구 의원들이 찬성할까,반대할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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