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두번 죽은 백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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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린 몰라요.사과를 해도 상부에서 할 것이고….』 서해페리호 白雲斗선장(56)의 시체가 인양된 15일 오후.白선장의 시체검안을 위해 위도행 배를 탄 林相吉검사는「白선장 잠적」발표로고통을 겪은 유가족들에게 사과라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곤혹스럽게 피해갔다.
林검사는 위도주민들을 다시 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운듯 위도에서하겠다던 시체검안을 배위에서 하고 서둘러 뱃길을 돌렸다.
林검사도 굳이 변명할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수사지휘는『白선장이 1백% 살아있다』는 검.경합동수사본부(본부장 李東기부장검사)의 단정적 발표에 짜맞추기 위해「증거」확보를 채근한데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경이 수백명을 동원해 수배하는동안 배를 끝까지 지켰던 白선장은 조타실의 차가운 물속에서 인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주검은 무책임한 목격자의 어설픈 증언과 과학적 수사나 신중한 대처와는 거리가 먼 檢.警의 豫斷,거기에 놀아난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추측보도로 명예까지 짓밟히는 아픔을 겪었다. 고통을 당한것은 白선장의 주검뿐이 아니었다.
요란한 수색작업으로 인해 5백여가구의 위도주민들은 58명이 한꺼번에 사망.실종되는 아픔속에서도 감시당하는 신세에 처했다.
白선장과 선원들의 유가족들은 죄짓고 달아난 집안이라는 누명을쓰고 차가운 이웃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사고직후 위도에 거처를 둔 선원가족들은 家長을 잃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몸져누운 白선장의 미망인 金孝順씨(53)외에는 모두 뭍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목숨걸고 조난자 구출에 나섰던 사람들중 일부가 범인은닉 혐의를 받고 검찰로부터 추궁당하기도 했다.
선원가족과 위도주민들은「검거소동」을 부추긴 일부 언론의 보도에 특히 분노를 느낀 듯하다.
『白선장이 살아있는 것을 봤다』는 崔모씨의 제보를 근거로「생존 가능성」을 제일 먼저 퍼뜨린 것이 언론이었고 검찰도 별다른노력없이 맞장구쳤었기 때문이다.
白선장은 죽음으로 명예를 다소나마 회복했다고 볼수 있지만 검찰.경찰의 공신력과 언론의 책임문제는 지금부터 반성과 검증을 거쳐야 하리라 본다.
〈扶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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