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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사회질서(선진국 무엇이 다른가:1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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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키면 편하지만 어기면 가혹/“다종·공익위해” 무차별 벌금
음주운전에 관한한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엄격하다.
더구나 신용사회인 미국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얼마나 마셨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전자가 얼마나 정직하게 경찰관의 질문에 대답하느냐를 우선적으로 검증한다.
뉴욕에서 무역업을 하는 김은씨(41)의 경험.
김씨는 모처럼 한국에서 온 친구를 대접하느라 거나하게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차를 운전했다. 차선을 오락가락하던 김씨의 차는 도로에 들어선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에 붙잡혔다.
『술 드셨습니가.』 『예,취해서 집까지 갈 수 없을 것같아 모텔을 찾는 중입니다.』
경찰은 김씨의 일행을 모텔까지 찾아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만일 김씨가 술마신 것을 부인했다면 상황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바뀌었을 것이다.
우선 차에서 끌려나와 허리뒤로 수갑을 채인채 땅바닥에 쓰러뜨러져 목을 구둣발로 밟히고 샅샅이 몸검색을 당한다.
그리고 경찰서로 끌려가 재판을 받고 석방될 때까지 변호사 비용 등 경제적 손실 4천∼5천달러에 면허정지·마음고생 등.
「법은 곧 상식」이란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미국 사회에선 상식이 허용하는 범위에선 어느 정도의 일탈도 용납되지만 거짓·계약 위반일 경우엔 가차없이 준엄한 제재가 가해진다.
자신들의 의사를 알리기 위한 시위는 얼마든지 허용된다. 그러나 경찰이 지정한 장소·시간·제한선(Police Line)을 넘을 때는 「개 끌려가듯 끌리고 개 패듯 얻어맞는」 인간 이하의 물리적 제재를 받아도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다.
『LA폭동을 촉발한 흑인 로드니 킹에 대한 경찰관들의 집단폭행이 무죄로 평결난 것도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다민족사회인 미국의 기준에서 보면 있을 수 있는,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다수의 안녕을 위해 소수의 무법·탈법은 어떤 수단·방법을 써서 제어하더라도 무방하다는 불문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지요.』
◎선진국 무엇이 다른가/잠수복입고 바닷속까지 감리/「껌 금지법」통과 하루만에 즉효/싱가포르
싱가포르는 벌금 천국이다. 지하철안에서 음식물을 먹거나 어린이가 지하철 문을 잡고 장난치면 부모에게 벌금 5천 싱가포르달러(싱가포르 1달러는 한화 약 5백60원).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을때 휘발유가 3분의 2 이상 안차도 벌금,엘리베이터나 에어컨이 있는 건물안에서 담배를 피워도 벌금,공중화장실에서 용변후 수세식 물을 내리지 않아도 벌금 등 상식적으로 남에게 폐가 되겠거니 생각이 들면 여지없이 벌금이 매겨져 있다.
「이곳에서 한달만 살라고 하면 살림 거덜나겠구나」하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반대로 벌금 이외의 수단으로 이렇게 깨끗한 도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뾰족한 묘안이 달리 없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싱가포르의 벌금 체계를 놓고 불평들을 합니다. 그러나 불과 25∼30년전으로 되돌아가 오늘날 청결하고 아름다운 싱가포르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질병·쓰레기·마약·도박,그리고 무질서가 만연돼있던 시절에서 환골탈태하는 길은 이것뿐이었다는 싱가포르 문화공보부 선전처부처장 핸드릭 W K 응씨의 설명이다.
싱가포르도 70년대 초반까지는 체벌 위주였다. 그러나 기대만큼 효력도 없었고 「쓰레기를 버렸다고 인신까지 구속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인권 시비까지 일었다. 규칙에 대한 일탈을 벌금으로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싱가포르정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벌금은 국민을 교육시키기 위한 것이다. 벌금의 실효를 높이기 위해 최대한 액수를 올려 국민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자.』 벌금 시행 초기만 해도 담배꽁초를 2∼3번만 함부로 도로에 버렸다 적발되면 집을 팔아야 할 정도로 벌금액수가 엄청난(최고액 1천달러)것이었고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올 1월2일 싱가포르 유력지 스트레이트 타임에 『껌을 함부로 버려 민감한 지하철문 센서에 고장이 잦다』는 껌공해에 대한 내용이 보도됐다. 1월6일 싱가포르 국회에서 껌금지법이 통과됐다. 백해무익한 껌을 싱가포르에서 몰아내자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싱가포르에 수입된 껌은 일정기간안에 재수출해야하며 껌을 판매하는 행위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유예기간을 두었지만 1월7일부터 싱가포르 전역에서 껌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처음엔 싱가포르에서 산다는 것이 삭막하고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결국 정도와 상식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훨씬 편하다는 것이었지요. 처음의 충격은 일탈이 다반사가 돼있는 사회에서 갑자기 무균사회로 들어왔을 때의 문화적 쇼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현지법인 삼성물산 이성우과장은 질서사회에 대한 믿음이며 질서 일탈에 대해선 무자비하게 가혹한 것이 선진국들의 특징인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의 모건설업체가 몇년전 싱가포르에서 대규모 한안공사를 수주했다. 싱가포르 감독기관의 감리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지만 싱가포르 진출이 처음이었던 이 건설회사 현장 책임자는 「엄격해봐야 얼마나…」라는 심정으로 시공에 들어갔다. 얼마후 현장 책임자는 자신의 예단이 얼마나 무지한 것이었나를 알았다. 지반을 굳히기 위해 바닷속으로 돌을 붓는 작업. 시방서에는 가로·세로 돌의 크기가 지정돼 있지만 국내 공사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시방서대로 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상식. 그러나 싱가포르 감리사가 매일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돌의 크기를 재는데는 요령을 부릴 재간이 없었다.
만일 시공이 시방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감리자의 판단이 내려지면 6개월간 공사중지후 재판정. 재판정으로 다시 공사가 재개된다는 보장도 없다. 일본의 건설업체가 다리를 건설하면서 감리의 지적으로 공사중지 명령을 받자 아예 완공직전의 다리를 철거한후 다시 건설했다.
◎싱가포르의 태형/마약범등 6개월에 1대씩… 두달치료/넉달간 불안감에 싸여 재범 생각못해
싱가포르에는 형벌중 태형이 있다. 회교전통으로 극히 예외적이긴 하지만 주로 마약사범에 적용된다.
죄질에 따라 금고형과 함께 태형량이 정해지지만 형벌의 원칙은 6개월에 한대씩이다.
탄력성이 뛰어난 재질의 곤장은 신체적으로 도저히 한대이상 견딜수 없을뿐 아니라 교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것. 우선 곤장을 맞으면 엉덩이 부분에 파열상을 입게되고 2개월 가량은 형무소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
완치된후 다시 태형을 기다리는 4개월여 동안의 세월은 심리적으로 견딜 수 없는 불안감을 주게되고 형기만료후 재범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
싱가포르는 70년대 초반까지만도 아편·마약이 큰 사회문제였으나 태형으로 다스리면서부터는 싱가포르인에 의한 범죄는 손꼽을 정도도 안되며 인근국가에서 마약단속이 엄격한 싱가포르를 경유,제3국으로 밀반출하기 위해 마약을 숨겨들여 오다 적발되기도 한다.
수년전 상당량의 헤로인을 싱가포르에 밀반입하려던 마약사범이 태형 12대를 선고받고 수감중이다.<엄주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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