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벙커C유 유출사고 현장-청정구역 기름띠 범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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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바다가 이 지경이 됐으니 살길이 막막합니다.』 기름 오염으로 아스팔트 바닥처럼 시커멓게 변해버린 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민들은 탄식만 거듭할 뿐이다.지난달 27일 전남 광양만에서 발생한 벙커C유 유출사고로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경남 남해.하동.사천군과 전남 여천.광양 지역의 어민들 은 추석명절도 잊은채 바다에 나가 기름제거작업을 벌였지만 피조개.바지락등 그동안 땀흘려 키워놓은 어패류가 기름에 모두 죽어버려 실의에 빠져있다 피해 면적은 여천.광양만 일대 8백58㏊를 비롯,경남 남해.하동.사천군 일대 3천6백여㏊등 모두 4천4백58㏊(1천3백37만4천여평:여의도의 14배).
게다가 당국의 허술한 방제장비로 조기방제까지 놓쳐 유출된 1천여t의 기름이 조류.바람을 타고 광양만과 남해안으로 확산돼 경남지역 3개군 공동어장 42개소를 비롯,1백49개소의 어패류양식어장 2천7백90여㏊와 전남지역 양식어장 72 개소 8백58㏊를 휩쓸어 어패류 채취는 물론 어로작업이 10일째 중단되고있다. 사고대책본부와 어민들이 사고발생 8일만에 바다에 떠다니는 기름 6백여t을 일단 제거했지만 나머지 4백여t이 해안 갯벌에 스며들거나 갯바위에 달라붙어 어장 황폐화까지 몰고와 피해규모는 엄청나게 늘어날 전망이다.
더욱이 기름제거작업때 무분별하게 사용한 유화제로 인한 2차 약품공해까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기름오염피해가 가장 큰 남해군의 경우 서북부 해안 1백20여㎞가 검은 기름으로 뒤덮여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고현.설천.남.서면등 4개면 18개 어촌계어민 1천5백여명이목줄을 대고있는 공동어장과 양식장이 모두 기름에 범벅이 된채 양식중인 어패류가 죽거나 녹아버린 것.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은 두껍게 깔린 검은 기름이 깊이 20~30㎝까지 스며들어 자연산 바지락이 모두 죽어버리는등 생태계 마저 파괴됐고 파래.톳등을 채취해온 갯바위도 폭 1~2m의 검은 기름띠가 엉켜 흉물로 변했다.
남해 바다를 끼고 65가구 어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고현면화전마을 주민들은 이번 기름유출 사고이후 허탈감에 빠져있다.
마을 공동어장 1백여㏊가 기름으로 뒤덮여 연간 2억~3억원의소득을 보았던 피조개양식장과 자연산 새조개수확을 못하게 됐다.
또 연간 8천만원어치의 소득을 안겨준 바지락 양식장 7㏊도 기름으로 뒤덮여 음력 동짓달 보름께부터 채취할 바지락 1천여t의 수확을 포기해야 할 실정이다.
마을주민들은 또 마을앞 해안을 뒤덮은 기름 냄새가 코를 찔러두통증세를 앓는 주민이 늘어 4일 오후에는 마을 주민 李경우씨(43)가 악취로 현기증을 일으켜 쓰러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주민들은 사고선박 보험회사측으로부터 오염기름 방 제용역을 맡은동성항운이 유접착제등으로 걷어낸 기름덩이를 담은 부대를 제때 치우지않고 쌓아두는 바람에 심한 고통을 겪고있다고 호소했다.
피조개 마을로 소문난 서면남상리 염해마을은 마을앞 갯벌 2백여m가 기름으로 뒤덮인데다 피조개 양식장 36㏊와 바지락 양식장 10㏊도 기름에 오염돼 연간 2억원이상 소득을 올린 생계터전을 잃은채 망연자실한 표정.
방파제에 들러붙은 기름을 닦아내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경남지방경찰청 제2기동대 소속 전경 1백50여명은『종일 쉬지않고 작업을 해도1㏊를 청소하기 힘든 실정』이라며『장화가 기름에 범벅이돼 3일도 안돼서 오그라들기 때문에 신을수 없을 정도』라며 심각한 오염상황을 실감케 했다.
***전경들 비지땀 4일 오후5시쯤 삶의 터전을 오염시킨 벙커C유 해상 방제작업을 위해 부락민이 총동원된 여천시묘도동 원동부락 앞 해변가에는 50여명의 주민들이 갯바위와 암벽에 뒤덮인 시꺼먼 기름찌꺼기를 바라보면서 한숨만 짓고 있었다.
특히 이마을 주민들은 여천 석유화학단지와 광양 제철공단이 조성된뒤 어업권이 소멸당한채 선박사고가 발생할때마다 어업 면허권이 없다는 이유로「쓰레기 보상」으로 만족해오다 이번에 대형 기름 유출사고를 당했다.
부락 통장 鄭珉珠씨(37)는『마을앞 공동어장에서 새조개.바지락.고막등 패류채취로 연간 12억원대의 수입을 올렸으나 이번 기름 유출사고로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할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鄭씨는 또『마을 공동어장과 개인별로 할당된 갯벌을 통해 연간 1천5백만원의 개인 소득을 올렸으나 이젠 생계를 이어나갈 방법이 막막하다』며『해변가에 밀려온 기름찌꺼기가 마치 검정 페인트를 칠한 모습』이라고 했다.
***문제점 이번 기름유출사고로 엄청난 피해를 보게된데 대해어민들은 당국의 원시적인 방제장비와 늑장방제로 기름확산을 조기에 막지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있다.선박충돌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항로가 좁은데다 광양제철과 여천공단을 드나드는 각종 유 조선과 화물선등으로 붐벼 사고위험이 커 해양오염특별관리 해역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선박들의 안전운항을 통제하는 기구가 없어 대형 해난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게다가 기름유출등 해양오염사고에 대한 처리도 항만청.해양경찰.환경처.행정기관 등에 분산돼조기방제체제에 허점을 드러냈고 2백ℓ 이상의 대형 기름유출사고를 처리하는 해경의 방제장비도 고작 오일펜스 8백m와 유처리제살포기.기름회수기 각 4대뿐이어서 대형 해상오염 사고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화제 오염 우려 이번에 기름방제작업을 하면서 살포한 2만1천ℓ의 유처리제가 가져올 생태계파괴등 제2차 오염도 문제다. 유출된 기름을 분해시켜 바다밑에 가라앉게하는 유처리제는 무리하게 사용 할 경우 바다밑을 화학성분의 흰 피막으로 덮어 패류와 해조류의 포자가 달라붙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과 선박보험회사등은 기름제거작업이 거의 마무리되는 5일부터 어민대표등과 피해조사에 나설 계획이지만 공동어장등에 대한 정확한 피해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구체적인 피해조사는 시일이 더걸릴 것으로 보인다.
[南海.麗川=許尙天.具斗勳 기자] ***◇해상 기름유출사고 일지 ▲85년3월13일 인천 유조선좌초,기름유출 ▲85년3월27일 부산 외항선좌초,同 ▲87년3월4일 당진 유조선 벙커C유유출 ▲87년4월21일 부산 이집트선적좌초,기름 유출 ▲87년7월1일 신안 그리스화물선좌초,同 ▲88년2월24일 영일 유조선침몰,同 ▲89년12월13일 인천 파나마화물선,同 ▲90년7월15일 인천 유조선충돌,同 ▲90년7월27일 통영 선박충돌,同 ▲91년4월26일 부산 선박충돌,同 ▲92년1월21일 광양원유운반선 同 ▲92년2월28일 제주 선박좌초,同 ▲92년7월20일 부산 유조선충돌,同 ▲93년4월12일 양산 유류운반선침몰,同 ▲93년6월19일 부산 유조선침몰,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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