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만은 안된다”서 후퇴/일 시장개방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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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언젠가는 불가피” 각료 수시언급/미­EC 압력겨냥 “입막음” 시각도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을 위해 최대한 협력하겠다면서도 타결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쌀문제에 관한한 국내자급체제 유지」를 반복해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것일뿐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전 총리를 비롯,일본정부 관계자들은 언젠가 일본이 쌀시장 개방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인식,이를 시사하는 발언을 종종해왔다.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부총리겸 외상 등 자민당 정치지도자들도 곳곳에서 강연을 통해 이와 유사한 발언을 해왔다.
자유무역으로 오늘날 경제대국으로 된 일본이 한층 자유무역을 강화하는 UR타결 문제에서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워 쌀만은 개방치 않겠다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쌀시장을 개방할 경우 미국과 비슷한 경지면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되지 못하는 일본 농촌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다. 이같은 국내정치적 이유로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쌀시장 개방을 거부해왔다. 또 일본국회는 결의를 통해 쌀자급체제를 유지한다는 선언을 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정치지도자·학자·외무부 등 정부관계자들은 은연중 일본이 쌀시장을 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틈만 나면 강조해왔다. 어느날 갑자기 쌀 시장을 개방해도 이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기르고 충격을 완화하자는 일종의 면역효과를 노린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 농수산성 등을 중심으로 그동안 쌀시장개방에 대비,맛으로 승부를 내자며 맛좋은 쌀개발 등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본의 쇠고기 시장이 개방됐지만 일본의 낙농가들이 전멸하지 않은 것처럼 일본의 쌀 재배농가도 개방외풍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또 우리는 쌀이 전농가소득의 24%,농업소득이 44%,국민총생산의 3.1%를 차지하지만 일본은 전농가소득의 4%,농업소득의 32%,국민총생산의 0.8%에 불과해 개방충격이 우리와는 다르다.
이같은 상황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총리가 개방시기를 연내라고 언급한 것은 종래보다 시기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가 이같은 발언을 한것은 ▲UR 교섭기한이 앞으로 3개월 밖에 안남았고 ▲미국·유럽공동체(EC) 등으로부터 쌀시장개방이란 정치적 결단을 내리도록 강한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여 ▲이에 앞서 국내적으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환경을 정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호소키와 총리는 냉해로 인한 쌀 긴급수입이라는 사태를 맞아 쌀시장 개방문제를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이밖에 호소카와 총리는 27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것이 확실하므로 사전에 자유무역 유지와 추진을 위한 일본의 노력을 미 언론에 흘려 미국의 예봉을 꺾자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가 일본언론이 아니라 미국 언론에 먼저 쌀시장 개방결단을 시시하는 발언을 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문제는 그가 쌀시장 개방을 극력 반대하는 사회당 등 연립여당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UR가 전체적으로 일괄타결되지 않고 부분적으로 합의된 것만 타결되거나 연내타결에 실패할 경우 일본만 서둘러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 꼴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일본 국내에서 세찬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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