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주도권 잡기” 배수진/민주당의 정기국회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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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혁 입법통해 새 정부 「중간평가」/예산공부 철저… 새 모습부각 박차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문민시대에 걸맞은 새 야당상을 보여주겠다며 의욕이 넘친다. 정책위를 중심으로 실명제와 각종 정치관계법에 대한 연구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소장의원들은 예산공부로 땀을 흘리고 있다. 이기택대표도 시장·중소기업 등 현장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후 지금까지 제구실을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만 노출시켜왔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민주당 내부에는 이대로 가다간 당은 물론 나라까지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아울러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야당의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선보여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가고 있다.
개혁의 입법화·제도화는 새 정부 개혁작업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민주당은 개혁의 입법화 과정을 통해 6개월 넘게 진행되어온 새 정부의 각종 사정에 대한 공과를 따져본뒤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그중에서도 국가보안법·안기부법·도청방지관련법 등 이른바 비민주법의 개폐는 정부·여당과 차별성을 보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들 「비민주법」의 개폐는 이미 민주당이 국회 정치특위에 안을 내고 협상중이나 여야 의견차이가 워낙 커서 쉽게 마무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정보조정협의회를 폐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낸 안기부법 개정과 도청방지법상의 보안도청의 허용여부,또 국가보안법을 민주질서보호법으로 대체하는 문제 등은 이견이 좁혀지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들 법안협상과정에 철두철미 이성적·논리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야당의 개혁성을 선명히 부각하는 한편으로 반대만을 위한 반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줄 참이다. 문민정부 들어 처음으로 편성한 예산안 심의도 민주당이 정기국회에서 각별히 신경쓰는 분야다.
민주당은 예산심의에 대비해 「개혁정치모임」 주관하에 소속의원들이 하루 5시간씩 예산공부를 해왔다. 정부의 예산안에 대해 민주당은 정치적 목적으로 대형국책사업을 벌이는 등 「팽창예산」을 편성했으며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갈 태세다. 특히 경부고속철도·영종도 신공항 등 대형 사업들은 6공에서부터 계획된 「정권유지성」 사업이어서 전면적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없다는 당내반론도 만만치않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선 예산심의를 각종 정책·입법심의와도 연계해 대여공세의 주무기로 활용해온 지금까지의 행태를 이번 정기국회부터는 지양하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실명제 보완책을 둘러싼 여·야·정부의 공방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실명제에 따른 정책의 시행착오를 막기위해 대체입법화를 정부·여당에 촉구할 계획이지만 민자당이 이를 거부할게 뻔하다. 민주당은 이에따라 이미 발표한 당의 실명제 보완책에다 이 대표의 현장소리 청취 등을 반영,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당장 내달 4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는 민주당의 대여공세 출발점이다. 민주당은 지난 국정조사에서 큰 소득없이 넘겨진 과거청산문제를 국정감사를 통해 계속 다뤄나갈 방침이다. 율곡사업이나 12·12 쿠데타,그리고 김대중 전 대표의 납치사건 등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사안들에 대해 공격함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본다는 속셈도 깔려있다.
그러나 정국흐름을 바꿀만한 이슈가 없다는 점에 민주당측의 최대고민이 있다.
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증인출석 문제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지니고 있지만 민자당에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과거사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이 쏠리는데다 국정조사기간의 연장처럼 정부·여당의 강력한 반발로 효과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대여공세가 언저리에만 그치고 핵심을 피해간다면 공격의 예각은 그만큼 무뎌지고 모처럼 벼른 공격은 가속도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재산공개로 인한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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