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4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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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3.가을 다음 해 구월(3) 은서는 옆자리에서 도시락을 들고교문을 향해 갔다.큰문은 닫혀있고 샛문만 열려있다.늙은 수위가무료하게 앉아있다가 은서의 얼굴을 알겠는지 일어서 웃으며 고개짓을 한다.
『잠깐만 기다리세요.제가 전화해 드릴게.』 은서가 함께 인사를 하고 옆에 섰을 때 세와 연결이 되었는지 늙은 수위는 목청껏 외친다.
『이선생님… 사모님 오셨어요.내려와 보세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늙은 수위는 은서를 향해 조금만 기다리세요,하는 뜻으로 웃는다. 『이선생 참 좋으시죠? 학교에서 하는걸 보면 집에서 어떤 모습일지 환합니다.그나저나 이선생 잘 살피셔야겠어요.여기여학생들이 너무나 좋아해서 말이에요… 어 저기 오시네.』 저만큼 꽃밭에 단발머리의 여학생 흰 동상이 세워져 있는 약간 비탈진 길을 세가 걸어온다.늙은 수위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후 세를 향해 마주 걸어갔다.
세가 은서가 들고 있는 도시락을 받아든다.
『이러지 말라니까 왜?』 말은 그리 하면서도 세는 활짝 웃는다. 『아침에 깨우지 몰래 빠져나가듯 출근했으니 나도 뭔가를 해야 될것 같아서….』 『새벽에 몇시에 잠자려고 방에 들어왔는지 기억이나 해?』 『글쎄.』 『네시야 네시,그런 사람을 내가어떻게 깨우나.』 『미안해.』 『뭘… 일하느라고 그런걸.내게 미안해 할건 없지만….』 세는 말을 끊고 웃는다.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은서는 듣고 또 들어 다 외운다.그러고도 건강이 배겨 나겠어.왜 일을 그렇게 하려고 해.일을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조금 줄이면 안 되나? 세는 줄이라고도 안 한다.줄이면 안 되나?한 다.
은서는 마땅히 할 말이 없어 늘 세의 그말이 나올 때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서…라고 얼버무린다.그러면서 혼자 반문한다.때? 무슨 때? 『아침에 뭘 좀 챙겨 먹고 가지… 그냥 나갔대…우유까지도 그대로던데.』 『나 먹는거 신경 쓸 것 없어…아침에 깨서 네가 옆에 자고 있는 것만으로도 난 배 안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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