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열전>빔벤더스-이미지와 현실의 불화 부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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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빔 벤더스는 77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독일문화원 초청으로 방한한 이청년 영화작가는 당시 국내에는 전혀 그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 감독으로 소개되 었으나 매스컴의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한채 돌아갔다.그로부터 16년이 지난현재 그는 독일 감독으론 유일하게 국제적으로 고정팬을 확보하고있는 스타감독이 되었다.
전통과의 단절에서 출발한 뉴 저먼 시네마 감독중 당초 벤더스의 위상은 그리 확고한 것이 아니었다.라이너 파스빈더의 예민한정치적 감수성도,베르너 헤어조그의 신비주의도 갖추지 못한 그가오늘날 그들보다 폭넓은 인기를 누리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벤더스의 성공 비결은 이들만큼 철이 없었다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그는 자신을 영화의 길로 인도한 이미지의 세계에 보다 철저히 집착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그의 영화에 놀랄만한 호소력을 부여했다고 볼수 있다.다 시 말하면 현실의 엄혹함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이미지의 환기력에 보다 충실하는 것,그래서 이미지가 전해주는「행복의 약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드러내는 것이 그의 영화의 핵심이다.「보는 것」의 매혹으로 가득 찬 그의 영화는 그러 나 그 이미지가 현실과빚어내는 불화를 필연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그래서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거의 언제나 고향 상실증 환자들처럼 기약없이 떠돈다. 1945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난 벤더스는 독일이 패전의 잿더미에서 경제 부흥을 일궈내는 기간에 성장기를 보냈다.나치 잔재 청산을 운위하는 분위기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자연스럽게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불신과 독일적 전통에 대한 수치 심을 체득하게 된다.그리고 당시 유럽사회에 물밀듯이 밀려오던 미국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으면서 성장한다.특히 록 뮤직에의 심취는 유별난 데가 있어 그 자신이『고독한 내10대시절을 구원해준 것은 미군방송의 록 뮤직이었다』고 술회할 정도 다.
67년 뮌헨 영화학교에 입학한 그는 71년 친구인 작가 피터한트케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페널티킥을 맞는 골 키퍼의 불안』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장식한다.이어『주홍글씨』『도시의 앨리스』『빗나간 동작』등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그 는 76년『시간의 흐름속에서』로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커다란 트럭을 몰고 지방도시 극장을 순회하며 영사기를 고쳐주는 한 사내가 아내에게 버림받아 자살을 결행하다 실패한 사내를만나 함께 여행하고 헤어지는 여정을 담담하게 그린 이 영화는 버림받은 도시의 황량한 풍경,타인과의 의사 소통 불가능,로큰롤.영화에 대한 광적인 애정등 벤더스적인 주제들이 솔직히 드러난흑백 로드 무비다.
77년 전후에 성장한 독일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극히 영화적인 방법으로 탐색한『미국인 친구』로 미국 관객들에게 인정받은 그는 이듬해 영화 제작자로 나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초청을 받아 대망을 품고 할리우드로 건너간다.그로 부터 84년『파리 텍사스』가 완성될 때까지 미국에서의 활동은 그에게 이미지가 아닌 현실로서 미국문화와의 고통스런 싸움을 안겨준다.『해미트』는 제작사가 「재미없다」는 이유로 재촬영을 지시했고 그는할리우드의 시스팀대로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자신이 유럽인이라는 것을 그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서야 체득하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영화사 창고안에 잠들어 있다 올해 겨우 빛을 본 그의 87년 작품『베를린 천사의 시』는 바로 그의 독일인으로서의 자각을 담은 영화다.「독일에서 유일하게 역사가 존재하는 분단의 도시」베를린을 놀랄만큼 아름답게 포착 한 이 영화는 그러나 한편으론 벤더스가 너무 쉽게「고향」을 찾아버린 것이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한다.존 포드.니컬러스 레이.킨크스에 열광하던 문화 식민지의 방황하던 한 청년이 유럽 최강국이 된 통일독일의 시민으로 안주해버릴 것인지 는 과연 흥미로운 문제다.『베를린 천사의 시』이후 그의 신작이 국내 개봉되기를 영화팬들이 희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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