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경제의 두 전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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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걱정을 불쑥 꺼내기가 꽤나 거북스러운 분위기다. 금융실명제의 거센 회오리와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으로 온나라가 들끊고 있는 판이다. 이런 판국에 경제문제의 제기는 자칫 위장된 반개혁쯤으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런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의 와중에서도 산적한 경제현안들을 그것대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다급한 경제현안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금성수기인 추석과 실명화 마감일인 10월12일의 두단계 실명제고비가 눈앞에 다가섰다. 엄청난 지원자금을 쏟아붓고도 중소기업 자금난은 끝없이 이어진다. 하반기로 예정된 금리자유화와 업종전문화,그리고 세재개편작업의 끝마무리도 결코 만만치 않다.
경기와 투자의 회생,수출목표의 달성,목표선 안에서의 물가관리는 점점 난도를 더해간다. 경기회복의 여건을 보면 나라안의 냉랭한 분위기는 두고라도 바깥사정 역시 호전의 기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엔고로 휘청거리는 일본경제를 두고 한일 양국 경제의 동반침체에 대한 우려까지 대두되는 형편이다. 그토록 탄탄했던 일본경제의 갑작스런 동요는 허술한 기반위에 선 우리경제에 음미할만한 시사를 던진다.
실명제의 후유증 처방으로 엄청나게 풀려나간 돈다발이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은 크다. 높은 대일 수입의존도에 엔고가 맞물려 수입물가와 생산원가의 상승이 불보듯 훤하고 냉해로 인한 농산물 공급차질과 무자료거래에 의존해 오던 상품유통의 위축도 물가불안을 가중시킨다. 중요한 경제현안들이 개혁의 물굽이에 가려 혹시 소홀히 취급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동시에 대처해야 하는 개혁과 경제의 두갈래 전선은 어느쪽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단순히 비교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경제적 충격이 겁나서 개혁을 주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옳은 것처럼 개혁조치의 실시과정이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금융실명재의 조기정착과 공직자 축재문제의 빠른 매듭이 강조되는 것도 개혁작업의 효율적 수행으로 비용을 줄이자는 뜻이다. 개혁의 파고가 높을수록 경제쪽을 맡은 관료집단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우리 권력구조의 특성상 누구보다 대통령이 경제를 중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흘려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정부의 국정 수행능력이 일정한데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다 보면 경제분야에 신경쓸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국민들은 생각하기 쉽다. 이런 생각은 곧장 경제불안에 대한 예상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지금필요한 것은 개혁과 겡제의 두 전선에 임하는 정부의 균형감각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다. 경제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끊임없는 관심표명과 경제관료 집단의 바쁜 움직임만이 이런 믿음을 확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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