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재산운용의 경제학(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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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측면으로 봐도 이번에 재산을 공개한 공직자들은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계층이다. 이 지도층이 국민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규모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윤리차원을 넘어 구조적인 제도정비가 필요함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공개된 재산목록중 역시 국민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대목은 상당수 공직자들이 적지않은 부동산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몇십년동안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부동산이 제일 효과적인 축재수단으로 여겨져왔음을 감안하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정권이 부동산투기가 망국병이라고 외쳐왔고,국민저축을 동원하기 위해 모든 정책적 홍보를 해왔음을 고려하면 공직자의 부동산투자가 잘못된게 뭐냐고 강변할 수 만은 없다.
무엇보다도 부동산이 효과적인 축재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경젝구조를 반성하는 시각이 중요하다. 부동산의 재산증식적 가치는 인플레성장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여기에 문제를 더 악화시킨것은 공직자가 경제운용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각종 내부정보와 권한 이용하기도하고,자신의 이해를 정책에 반영해온 측면이 지적되어야 한다. 우리사회는 아직 노후보장을 스스로가 챙겨야하는 사회다. 공직자도 국민의 일원이기 때문에 노후보장을 준비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공인으로서의 개인적 노력은 사회규범이나 국가의 발전방향과 일치해야 할 것이다.
공개된 재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번에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를 동시에 고려하면 문제의 심각성을 한층 더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우선 개인자산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볼 때 금융자산과 부동산자산 사이에 엄청난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신고된 부동산이 공시지가로 시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반면 금융자산은 실액 모두가 포함된다는 점 뿐 아니라 상속·증여나 세금을 낼 때도 금융자산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간단한 사실의 대비가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책당국자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국민을 앞에서 이끌어가야 할 지도층이 스스로는 부동산을 통한 재산증식에 앞장서면서 성실하게 금융저축한 사람들을 크게 불리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금융저축에 대한 자금조사나 세금추징에 있어서도 부동산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번에 공개된 공직자의 재산이 많고 적음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나타나 있는 우리사회상과 개인윤리의 실종에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한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직자는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측면 외에 구조적으로 이들 지도층이 독점적 권력행사의 여지가 없도록 시장기능을 강화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할것이다. 동시에 노후보장을 확충해 불필요한 축재동기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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