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충격」 증폭될까 우려”/노동법 개정 왜 유보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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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정 검토한 「3자개입금지」이미 실시… 명분도 잃어/합의가능한 시급한 조항 손질해 개혁의지는 보일듯
노동부가 노동관계법의 연내 개정을 전면 유보키로 결정한 것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장기간 지속된 현대계열사 노사분규의 영향에 따른 막다른 선택으로 보인다.
정부내에서도 금융실명제라는 돌발 변수에 따라 경제여건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노동법 개정은 경제에 미치는 충격과 부담을 가중시켜 산업계 전체에 큰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대해 노사 양측뿐 아니라 노측내에서도 노총과 재야 노동계의 의견이 팽팽이 맞서있고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돼있어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있는 이 시점에서 정부가 개정작업에 착수하는데 대해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정부가 고속철도와 영종도 신공항 건설계획을 조기화하는 등 경제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점에서 만일 정부가 노동법 개정을 들고나오면 이같은 노력에 스스로 재를 뿌리는 결과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내에서는 이같은 팽배한 반론에 따라 사실상 그동안 유보방침을 내정해오다 23일 노동부와 민자당의 당정협의에서 이같은 방침을 확정했다. 노동부는 당초 6공말기 착수된 근로기준법·노동쟁의 조정법·노동조합법·노사협의회법·노동위원회법 등 다섯개 노동관계법을 개혁 차원에서 개정,권위주의정권 아래서 왜곡된 노사관계를 문민시대에 걸맞게 재정립한다는 방침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관계법 개정작업은 이미 지난달 40일이상 계속된 울산현대계열사의 노사분규로 「일정」과 「내용」에서 모두 차질을 빚어 전면 유보를 에고했다.
노동부가 당초 노동법 개정때 전향적으로 개정할 것을 검토했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현대계열사 노사분규의 해결 수단으로 사용효과를 거둠으로써 노동법 개정방향 자체에 혼선을 빚어 법개정 추진을 어렵게 했다.
특히 현대자동차에 대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는 등 현행법에 근거한 강경조치를 취함에 따라 법개정의 명분도 많이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또 현대사태로 개정시안 제시가 늦어진 것도 연내 노동법 개정을 불가능하게 만든 요인으로 지적된다.
노동부는 당초 6월중에 노동법 개정시안을 공개하고 7,8월중 공청회 등을 거쳐 개정안을 확정,9월 정기국회에 상정할 계획이었으나 현대사태에 밀려 이같은 일정이 지연돼 연내 개정은 물리적으로도 무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노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노조의 정치참여 금지여부 ▲복수노조 허용여부 ▲변형근로자제 도입여부 ▲제3자 개입금지여부 등 조항에 대해 노사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 첫해인 올해중 노동법을 개정하지 못할 경우가 개혁입법차원에서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약화될 가능성도 있고 주변 여건이 이의 추진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사정의 일치된 견해다.
정부는 따라서 이해가 날카롭게 대립되는 조항은 피하더라도 합의를 찾기쉽고 산업선진화를 위해 시급한 조항만이라도 부분손질하는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제정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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