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경관의 법정구속(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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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근태씨 고문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가 고문 관련 전직경찰관들을 전원 구속한 것은 범죄에 대한 가시적 응징이 사건발생 7년 11개월만에야 이뤄졌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의 일실수사와 고문관행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특히 1심에서 중형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을 회피했던 것과는 달리 재판부가 전원을 법정구속한 것은 고문에 대한 강력한 응징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시대에 사람이 사람을 구타하고,비틀고,몸에 전기를 통하게하는 식의 물리적인 힘을 가해 한계상황에 물아넣고 자백을 강요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재판부가 이번 선고를 하면서 도피중인 전 경기도경 공안분실장 이근안씨에 대해 『이씨도 고문에 가담했다는 피해자 김씨의 주장이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유죄를 암시한 것은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판결을 보면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하여 하나의 범죄행위를 수사하고 처리하는데 8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야 했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주장만 있을 뿐 고문목격자나 물증이 없다. 구치소 의무과장의 증언도 김씨의 상처가 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만한 것은 못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처럼 고문입증이 어려워 이 사건의 마지막 사실심리단계인 항소심이 이제야 선고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바로 검찰로 대표되는 수사기관과 심지어 법원까지도 정치·사회적 변화에 휩쓸려 표류해야 했던 시국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국사건 앞에는 나약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검찰·검찰은 물론 법원에까지도 일대 맹성을 촉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대목이다.
원래 법관은 사건을 심리하면서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법관이 아니더라도 수사과정에서 범죄사실을 밝혀내고,인신을 구속하고,기소여부를 결정할 때 검찰도 그같은 잣대를 지녀야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대한변협과 피해자 김씨의 부인이 관련자를 고발한 것은 86년 1월이었고,그 1년뒤에야 검찰은 이 사건을 그것도 무혐의 불기소처분했다. 부천서 성고문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도 서울 고법의 재정결정에 의해 겨우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법원도 재정결정을 하면서 신청후 1년 10개월간이나 눈치를 보다 6·29이후인 88년 12월에야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밀실수사나 고문관행은 용인될 수 없다. 바로 그같은 이유로 해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범죄자들에게 유죄를 안기는데 애써온 변호인단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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