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남편의 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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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충남 공주에 직장이 있는 아내는 1주일 단위로 고속버스로 서울과 공주를 오간다. 나는 언제나 이 사실이 염려스럽다. 한국에서 교통 사고율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하루에 평균 30명 정도가 희생되고 1천명 정도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다고 하지 않는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서울 집에서 쉬고 월요일 아침에 공주행 버스를 타러 가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습관처럼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여보, 당신 언제 그만둬?』 『글세, 20년은 채워야지요.』 나와 아내의 대화는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것이다. 그 대화는 결혼하고 지금까지 15년 정도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되풀이되어 왔던 것이다.
나는 얼마 전 교통 사고를 대비한 보험에 들었다. 아내 모르게 나의 직장에서 들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내가 우연히 알아버렸다. 『당신, 나 교통 사고 날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이게 뭐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보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이 없기를 바라는 나의 간절한 기도지.』 먼저 홀아비 되게 하지 않을 터이니 당신이나 건널목 조심하세요.』
여권주의자들은 여성과 남성이 짝이 되어 하나의 가정을 꾸려감에 있어서도 남녀의 역할·기능·위치가 비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살아 본 인생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 내용이야 어떻든 다른 가족들은 가장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출근 거리가 먼 아내를 둔 남편의 걱정은 결코 적지 않다. 월요일 아침 아내가 먼 출근길을 달려 직장에 나가는 날이면, 나는 고속버스가 공주에 닿을 시간이 조금 지나 그의 직장으로 꼭 전화를 해보는 것이다. 무사히 당도했나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그것은 신혼 같은 애정이 있어서도 아니고, 아버지 같은 자애로운 마음이 있어서도 아닌 것 같다. 그야말로 내가 홀아비가 되기 싫어서도 아니다. 한 가정이란 건축물을 버티는 두 기둥인 남편과 아내의 오랜 신뢰와 인간적인 정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맞벌이 부인들이여 내내 안전하시라.【정소영(작가·단국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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