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쟁력 최우선 시대(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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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러시아·몽고와 함께 중국을 돌아보고 온 여야의원들이 우리경제의 국제경쟁력에 대한 위기의식을 토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들이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이러다간 큰 일 나겠구나 하는 위기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수출상품이 눈이 가지 않는 구석으로 밀리고,기술이나 가격에서 경쟁격을 잃고 있는 것이 금세 눈에 띈다.
○쫓기고 못 따라잡고
60,70년대에 우리 경제가 급속한 성장을 이룬 바탕은 저임과 열심히 일하는 근로정신이었다. 중국이나 동남아를 가보면 한때 우리의 강점이었던 임금수준은 이제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중국에는 우리돈으로 월 5만원 이하의 노동력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의 10분의 1 정도 수준으로 노동력을 구할수 있으니 임금의 비교 우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얘기다.
저임에 이득이 없어졌다고 해서 우리의 경쟁력도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보다 훨씬 높은 임금으로도 경쟁력을 지닌 나라는 많다. 일본과 구미 선진국들이 대개 그렇다. 문제는 우리가 임금수준이 훨씬 낮은 나라에 비해 생산성이 그만큼 높으냐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것은 일의 강도와 기술 및 감각의 우위 뿐이다.
한때 우리가 어느 나라 사람 못지 않게 열심히 일했던 건 사실이다. 일의 강도와 노동시간을 복합적으로 따질 때 그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87∼89년 산업현장의 분규를 겪으면서 노동시간이 대폭 줄었고,노동의 강도도 떨어졌다. 그에 비해 중국같은 나라는 경제개방과 함께 능률급적인 요소가 도입되면서 낮았던 노동 강도가 최근들어 상당히 높아져 가고 있다. 바로 여야의원들이 중국사람의 「만만디」가 깨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는 새로운 기풍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기술수준은 어떤가. 우선 기능차원만 봐도 우리 기능인들의 장인정신이 약화된게 아닌가 하는 조짐이 역력하다. 그동안 9연패했던 기능올림픽대회에서 올해 우리는 10연패의 기록을 세우는데 실패했다.
○행정의 경쟁력도 낮아
대만이 우리를 누르고 종합우승을 한 것이다. 열번에 한번쯤 질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그 상징적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기능 차원의 기술은 후발개도국에 대한 우리의 우위가 점점 좁혀져 가고 있다. 반면 첨단기술은 선진국을 따라잡기엔 아직 멀었다. 세계 최일류의 기술수준에 이른 것은 반도체의 메모리부문 정도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와 행정이 앞서가는 것도 아니다. 변화하는 세계에 눈을 감고 있는 우리 정치는 과거에 대한 소모적 논쟁에만 매달려 있다.
4명의 여야의원이 목소리를 합해 『어물거리다간 중국에 잡힌다』는 경보를 낸 건 그야말로 예외에 속하는 것이고 정치의 주류는 납치사건,12·12,율곡사업비리,평화의 댐같은 지난 정권때의 해묵은 일에 정력을 쏟고 있다. 그러느라 지금 나라가 처한 도전에 대해서는 처방은 고사하고 인식조차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은 경쟁력 약화에 부심하고 있으나 스스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일본의 기업인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중에 이런 게 있다. 일본은 기업과 국민의 경쟁력은 세계일류인데 행정의 경쟁력이 좀 문제라는 것이다. 일본행정의 경쟁력이 「좀 문제」라면 우리 행정은 어떨가. 아마 「상당히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제경쟁이라는 차워에서 우리행정의 큰 문제점으로 공직자의 부패,행정규제,국제화의식 결여 등이 꼽힌다. 새 정부가 개혁과 사정,행정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일단 방향은 잘 잡은 것이다. 그러나 국제화에 대한 인식 부족이 그 효과를 제약하고 있다.
이제 세계경제는 국경을 넘어 전개된다. 상품·용역·기술·자본이 국경을 넘어 오가는 시대에는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만 살아남는다. 국내에서 다른 여러가지 고려로 보호조치를 취해 국제경쟁력을 키워놓지 못한 상품이나 용역은 결국 외국의 지배를 자초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기업의 경쟁여건을 제약하면 그 기업은 경쟁여건이 좋아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돼 국내산업 공동화와 고용 상실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때문에 행정규제 완화는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게 본질적으로 단행되어야만 한다.
○규제완화 더 과감하게
우리의 경제·행정·국민의 경쟁력이 획기적인 변화없이 지금 상태로 지속되어서는 우리는 결코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지금은 위기의식을 갖고 분발할 때다. 국제경쟁에 유익하냐,해로우냐가 모든 문제 접근의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 정치는,경제는,행정은,국민은,나는 경쟁력이 있는가. 스스로 엄중하게 물어야 할 때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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