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교육(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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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학교 2학년 때쯤의 일이다. 즐거운 소풍길에 나섰는데 공사중인 도로 한복판에서 미국인 장교 몇사람과 한국인 인부 여러사람이 뒤엉켜 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지프를 타고가던 미군들이 길을 내달라 하고 인부들은 안된다는 것이 시비의 발단인 모양이었는데 의사가 통하지 않으니 싸움은 더욱 격렬해지기만 했다. 이때의 인솔교사가 영어선생님이었으니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얼굴만 벌개진채 좀처럼 나서려하지 않다가 싸움이 주먹싸움으로 발전했을때야 마지못해 나섰는데 그의 영어는 도무지 미군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영어를 그렇게 잘 가르치고 영어 잘 하기로 널리 소문난 선생님의 영어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학생들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몇년후 그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더욱 이해못할 일도 있었다. 영문학·영어학으로는 국내에서 정상급이라고 공인된 어느 명문대 교수가 1년간 미국의 어느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게되었는데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칭병하고 병원생활만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던 것이다.
사소한 예에 불과하겠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외국어교육의 한 단면이다. 문법에나 정통할뿐 외국어를 거의 구사할 수 없는 스승에게 외국어를 배운 학생들이 외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영어의 경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경우 6년,대학까지 졸업하는 경우 10년을 매달리도록 되어있다. 그처럼 몰두했으면서도 막상 외국인과 맞서면 가벼운 의사소통마저 불가능한게 우리 외국어교육의 현실인 것이다. 이쯤되면 「서당개 3년에 풍월 읊는다」는 우리네 속담도 외국어에는 해당되지 않는 셈이다.
그 까닭이 입시위주의 교육제도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교육부가 초·중·고생 외국어 교육강화 등 「국제화교육」에 중점을 둔 교육법 개정안을 마련,입법예고했다는데 국제화시대의 추세에 따른 당연한 조치로 보이지만 현실생활에 필요한 외국어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입시제도 개혁이 전제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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