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 연구 대저 눈길『주희일문집고』『주자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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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회주의 중국의 전통철학에 관한 자세가 우리에게 「비림비공」과 같이 다분히 정치적·사상적 투쟁형태로만 전달돼 왔던 상황에서 최근 중국학술사의 한성과로 평가되고 있는 수징난(속경남)의 주희에 관한2 권의 대작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충격에 속한다.
주희를 비조로 하는 주자학은 근대 서양의 사상과 가치관이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에 밀려들기 전만 해도 이 지역의 사회·문화에 주도적 영향을 행사해온 가장 비중 높은 학문체계였다.
모종삼·전목·진영첩·유술선·장립문·진내 등 선학들의 학문적 성과를 딛고 속경남은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최근 60여만자 분량의 『주희일문집고』와 80만자에 이르는 『주자대전-다원문화적 시각에서 본 주희』등 두 권의 대저를 출간했다.
문집 1백21권, 어류 1백40권 등 중국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주희의 철학세계는 난삽한 현학에의 이해와 엄격한 자료고증을 거쳐야 하고 종교·미술·음악·문자학·서화 등에 모두 능통해야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속경남의 연구성과는 중국학계에 하나의 경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1981년 상해 복단대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4년이라는 자료정리기간 중 3천여권의 고서를 읽고, 2백만여자의 메모를 하며, 수십만자에 달하는 주희의 시문을 정리했다.
지식인이 최하위인데 9급으로 분류되는 중국에서 그는 이 시기에 겪어야 했던 간고한 상황을 『대전』속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주희 연구에 매달리면서 매일 집에서 학교도서관 사이를 4시간씩 걸어다녔다. 매일 먼지가 켜켜이 앉은 선제서를 들추면 두 손이 새카맣게 되었다. 그 시절은 딸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집은 낡을 대로 낡은 10평방m의 단칸방이었다. 나는 어린 딸이 조금이라도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늘상 서서 책을 썼다.』
「십방립서헌」이란 풍자적 이름을 붙인 이 서재에서 그는 도합 1백40만자에 달하는 연구실적을 쌓은 데 이어 주희의 방대한 저작을 분류, 정리한 『주희년보장편』도 곧 낼 예정이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자료를 토대로 하면서 거시적인 안목에서 철학적 의미까지 자신의 고유한 방법론인 「문화환원법」을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그의 성과들은 주자학연구의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되고 있다.
중국의 일부학자들은 특히 그의 『대전』이 고증의 정확성에서나 분석의 세밀성에서 새로운 고전의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격찬하고 있다. 『대전』은 지금까지 주자학 연구서에서 정상으로 꼽혀온 전목의 『주자학신안』, 진내의『주희서신편년고증』과 함께 3대 정상으로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북경=전택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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