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나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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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비’-이재무(1958~ )

명경처럼 환한, 어지러운 햇살 속

하늘을 흔들며 나는 나비 한 마리

주춤주춤 물러서는 허공

수런, 수런대며 안간힘으로 망울 밀어올리던

장다리꽃밭

항아리 속 고인 물처럼

순간 정적의 바다에 빠져든다

나비가 지나간 빈자리

바람이 다녀가는 호수의

잔물결인 양

고요가 일어 출렁거린다

이제 곧, 장엄한 적막이 지나고

마른 대지를 적시는 큰비가 당도하리라


 
 이 시엔 명경처럼 환한 햇살 속, 망울을 밀어 올리는 장다리꽃, 큰 비가 오기 전의 적막이 있다. 일편시에서 현재와 조금 전과 앞을 모아 쥐는 눈이 대담하다. 마른 하늘과 항아리 물과, 꽃망울의 삼각대비는 팽팽하고. 폭우 직전의 울멍울멍한 심사가 긴장되어 있다. 이재무의 나비는 어디 숨어 있는가.

<고형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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