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정치 오명 씻자" 바빠진 자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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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파벌은 이제 끝장난 것인가』.
지난 22일 자민당 중·참 양의원총회 직후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륙)간 사장이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다. 이날 총회는 미야자와 총재의 사임표명을 듣고 후일 총재 선출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총회석상에서 젊은 의원들은 단상의 지도부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파벌영수 등 지도부를 성토하는 발언을 예사로 했다.
단상에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총재, 가지야마 간사장, 사토 고코(주등효항) 총무회장, 미쓰즈카 히로시(삼총박) 정조회장 등이 나란치 앉아 있었다. 그러나 미쓰즈카파의 야마모토 타쿠(산본척·2선의원) 의원이 『총재선거에 총재경험자나 파벌영수는 나서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고 발언, 총재에 뜻을 두고 있는 미쓰즈카 정조회장의 얼굴을 붉게 만든 것처럼 당 지도부를 무시하는 발언들이 예사로 튀어나왔다.
이 같은 모습은 자민당의 상징이었던 파벌이 붕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평소 물심양면으로 파벌영수의 지원을 받은 의원들은 총재선거에서 보스를 위해 발벋고 나서는 것이 통례였다. 파벌영수는 총재선거에 써먹기 위해 의원들을 양육(?)해왔다. 그래서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평소 자파의원들을 지원해왔으며 이는 바로 자민당부패의 원천이 됐다.
이번 선거에서 각 정당이 모두 정치개혁을 부르짖으며 소선거구·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한 것도 이 같은 파벌정치를 타파, 총선이 당 주도하에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선거에 돈이 들지 않게끔 하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젊은 의원들은 이날 총회에서 파벌영수들의 은공을 저버린 채 자파 보스를 총재로 미는 것을 거부하며 『양원총회에서 비밀투표로 총재를 선출하자』고 주장, 이를 관철시켰다.
물론 아직 파벌은 유지되고있다. 그리고 자민당은 총선에서 선거전 의석을 웃도는 성과를 거뒀다. 폭력단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다케시타노보루(죽하등) 전 총리는 총선에서 자민당 공전을 받지 못했지만 1등으로 당선됐다.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 총리의 딸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으며 가네마루 신(금구신) 전 부총재의 후계자도 무난히 당선됐다. 정치개혁에 소극적이었던 많은 자민당 인사들이 대부분 의석을 유지했다.
일본 유권자의 정치의식은 후보자의 정책보다는 평소의 인간관계를 따져 투표하는 선에 머무르고 있다. 아직도 의원들은 선거구민의 민원 등 유권자들의 뒤를 봐줘야 하며 그 지역에 공공사업을 될수록 많이 따다줘야 한다.
이 같은 선거풍토가 선거제도개혁으로 한꺼번에 변할 리 없지만 이날 자민당 양원총회의 모습처럼 변화의 조짐은 확실히 보이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가 이번 선거에서 무명선인들이 일본신당이란 간판만으로 35명이나 당선되고 신생당·신당사키가케 등 3개 보수신당이 1백석을 넘었다는 점이다.
차기정권은 정치개혁을 위한 과도내각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한 뒤 내년 초께 다시 총선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총선이 서너번 반복된 뒤 일본은 정권교체가 가능한 보수 양정당체제가 정착될 것으로 점쳐지고있다. 일본이 『경제1류, 정치3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다. 【동경=이석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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