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핵심」 비켜 개운찮은 뒷맛/일단락된 「율곡」비리 수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도입과정 속내용 못밝혀 한계/「성역」 파헤친 것 자체가 큰 성과
국민적 관심속에 진행됐던 율곡사업 비리수사는 검찰이 17일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장관,한주석 전 공군 참모총장,김철우 전 해군 참모총장,뇌물제공자 정의승씨(학산실업 대표) 등 5명을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함으로써 일단락된다.
전직 군관계자 4명중 2명은 국방장관을 지냈고 나머지 2명도 각군의 전직 최고 총수들로 이들이 달았던 별만도 무려 16개에 달할 정도여서 국민들은 충격과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육·해·공군의 무기·장비를 현대화하기 위해 74년부터 시작된 한국 군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은 지난해말까지 무려 22조5천억원의 천문학적 예산이 투여됐고 올해에도 국방예산의 31.6%에 달하는 2조9천억원이 지출되는 「국가의 안위」를 좌우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된」 감사가 이뤄진 적이 없었고,무기중개상·방산업체들이 끼여들어 각종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이 사업에 대해 감사원이 본격 감사를 벌이고 검찰이 비리관련자들을 구속조치한 것은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다.
○충격 넘어 허탈감
감사원은 4월27일부터 6월19일까지 54일간의 감사를 통해 전차·군함·전투기·탄약사업 등 23개 사업에서 1백18건의 비리를 적발,▲무기체계 및 기종결정 소홀 ▲고가품 도입으로 예산낭비 ▲성능미흡장비 미개량 ▲불필요한 무기구매 ▲국산화 추진 미흡 등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전직 군 고위관계자 등 6명이 검찰에 고발되고 대장 1명을 포함,장성 8명과 대령·중령 26명 등 모두 34명의 군인들이 무더기 징계·인사조치 통보된 것도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다.
그러나 율곡사업 비리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는 주목할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계를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율곡사업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사는 「온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무기구입 과정에서 어떤 로비가 행해졌고,누가 얼마나 뇌물을 받았으며,그 결과로 무기도입이 어떻게 잘못됐느냐」는 것이다.
FA18기가 정치적인 이유로 F16기로 기종이 바뀌었다는 주장에서처럼 헬리콥터·탱크·구축함 등과 부품들의 도입에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명백히 밝혀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9일의 감사결과 발표와 17일 끝난 검찰수사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감사원은 결과발표 당시 감사내용을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고,마땅히 공개해야 하는 고발자료도 대외비로 분류해 검찰로 넘겼다.
따라서 감사원이 무기 도입과정의 비리를 얼마나 밝혀냈고,그것이 율곡사업의 구조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다.
○고발자료 대외비
또 감사원이 율곡사업 비리 관련자로 통보한 6명에 대해 검찰이 확인한 혐의내용을 보면 『이것이 과연 율곡사업 비리의 핵심인가』하는 느낌을 준다.
군초소 건설과 관련된 수의계약,활주로 건설·군납·외국귀빈 접대비용,뇌물성 떡값,인사청탁 횡령….
검찰에서 확인된 이들의 뇌물수수 내용을 보면 과거 군사정권하에서 군수뇌부가 얼마나 파렴치한 일들을 저질렀나를 쉽게 알 수 있게는 하지만 문제는 국민들 모두가 알고 싶어하는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 과정에서 저질러진 비리」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혐의내용만으로는 수조원이 투입되고 커미션만 수백·수천억원에 이른다는 무기도입 과정에서 오고간 뇌물이라기보다 주로 군납과정에서 군 고위관계자와 업체 사이에서 관행적으로 오가던 뇌물의 성격이 더 짙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무기도입 과정에서의 비리를 밝혀내기는 커녕 된장·고추장을 납품하는 군납업자까지 불러 조사하며 사법처리를 위한 「직무관련성 입증」에 급급해야 했다.
사안의 중요성을 미뤄 무기도입 과정에서 소문만큼의 비리가 확인됐다면 관련자들을 모두 구속했을게 분명한데도 학산대표 정씨를 제외하곤 무기거래상을 아무도 구속하지 못한 것만 봐도 핵심에서 비켜난 감사·수사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같은 사태가 빚어지게 된 것은 감사원이 당초부터 무기도입 과정의 비리를 먼저 확인하고 로비를 한 업자와 뇌물을 받은 군 관계자를 추적한 것이 아니라 책임질 위치에 있던 군관계자들의 개인계좌를 뒤져 검찰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비전문가인 감사반원들이 무기도입 과정의 비리를 밝혀내는데는 한계가 있고,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자체가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개인계좌를 뒤지는 등 감사과정에서 빚어진 무리수와 성과의 한계 역시 지적받아야 할 것이다.
○눈가림수사 의심
조남풍 1군사령관의 방산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고 권영해 국방장관 동생과 무기거래상 사이의 의심스런 돈거래가 당초 발표에서 제외된 점도 『감사원이 성역없는 철저한 감사를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사실상 정치적 고려를 앞세웠고,검찰도 눈가림 수사를 한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는 결국 후련함보다는 찜찜한 뒷맛만을 남긴채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같은 한계와 무리에도 불구하고 율곡사업 감사가 결과적으로 군의 전력증강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율곡사업이 전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에 관계된 만큼 이제는 군의 사기를 회복시키고 명실상부한 군전력 증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해나가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김종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