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교통심리학 박사 도로교통안전협 이순철 실장|"운전자 의식전환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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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자동차만 많이 생산한다고 해 교통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교통문제의 해결 없이는 결코 교통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운전자와 보행자의 심리적 분석을 통해 교통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교통심리학자 이순철씨(42·도로교통안전협회연구소 안전운전연구실장). 그는 다소 생소한 학문인 교통심리학 박사학위를 획득한 국내 유일한 인물이다.
교통심리학은 본래 1912년 독일에서 운전기사 선발 때의 적성검사 연구로부터 시작된 학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발전을 거듭, 미국에서는 교통사고 예방과 관련된 자동차·도로·안전시설 등의 인간공학적인 연구로 발전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적성검사, 사고원인규명, 교통관련 교육에 관한 연구로 심화되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이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만도 40여명이나 된다.
이씨는 서울대 심리학과 출신으로 본래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연구하는 기초심리학에 심취했었다. 그러나 혼자만의 학문적 성취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하고자 84년 도일, 오사카대학연구생 과정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인기 높은 산업안전을 위한 심리학을 연구할 계획이었지만 일본현지에서 교통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교통심리학에 몰두하게됐다.
『처음 이 분야를 연구하니 주위의 인식이 낮아 학문으로조차 취급하기를 꺼려했었습니다. 1년 정도는 회의도 들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율은 세계최고이고 교통문화는 선진국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그는 6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국내교통상황의 개선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운전자나 보행자에게 중요한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도로표지판에 관한 연구, 교통질서 및 안전에 관한 운전자의 의식조사, 교통안전 교육체계 확립방안, 화물차량의 운전행동 및 사고특성에 관한 연구 등 교통안전에 관한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그가 연구한 광주시 도로표지판 정비기본 계획은 그대로 실행되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는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자동차 결함이나 정비불량이었던데 비해 현재는 교통사고의 70%정도가 그 원인이 보행자와 운전자에게 있다.
또한 운전자들의 행동을 국제적으로 비교한 바에 따르면 교차로 진입에 있어 운전자가 좌우를 확인하는 빈도는 캐나다 3.5회, 일본 2.6회, 한국 1.5회로 나타난다. 즉 한국사람이 급하게 운전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예다. 구미사람들에 비해 한국사람들은 시각적인 정보보다 청각적인 정보를 중시해 좌우확인의 필요성보다 미리 경적을 울리고 그대로 통과하는 습성을 보이고 있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와 같은 행태다.
한국의 교통사고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교통문화의 역사가 일천하다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는데 독일의 경우 초심운전자의 한계를 보통7년 경력에 10만㎞운행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핸들 잡은지 1년 후면 초보자는 아닌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운전한지 1∼2년 사이에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다. 즉 교통심리학에서는 이 때를 자동차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시기라고 한다.
또 일본의 경우 서울∼부산과 비슷한 거리인 동경∼오사카를 자가운전 승용차로 가는 것을 거의 자살행위로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그 위험성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 운전자가 아닌 일반인이 승용차를 1백㎞이상 움직일 때는 이용의 한계를 느끼는 시점이라고 한다.
교통사고의 조건은 위험물 발견이 늦었을 때와 판단착오를 일으켰을 때 발생하게 되는데 문제는 과속으로 연결되면 치명적인 사태를 야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씨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경우 과속이 너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한다. 집을 나서면 닥치게 되는 교통문제, 온 국민이 풀어야 할 난제가 된지 이미 오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씨는 이 문제와 싸우는 최첨병인 셈이다. <이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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