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은 뒷전… “내몫” 챙기기 급급/기소서 드러난 배 전회장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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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비서실에 전담직원 두고 전국걸쳐 땅매입/두아들 계열사에 이사 허위등재 급료 타가
검찰이 밝혀낸 (주)한양그룹 배종열 전 회장(53)의 각종 비리는 일부 기업인들의 「실종된 윤리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투기·외환밀반출·관련자 매수와 임금체불 등 기업인으로 저지를 수 있는 각종 탈법행위를 대기업 총수가 서슴없이 감행해 왔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배씨는 부동산붐이 일기전인 70년대 일찌감치 부동산투기를 통한 재산증식에 눈떠 자신과 부인 명의의 26필지 3만6천평(시가 6억여원)외에 친척 등의 이름으로 시가 1백98억원에 달하는 1백7필지 25만여평을 전국 각지에서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대규모 부동산을 관리하기 위해 배씨는 회장비서실에 전담직원을 배치,부동산 매입과 등기이전 업무에 매달리도록 했다.
그럼에도 배씨는 동서이름으로 산 경기도 양주군 토지 2만8천여평을 86년부터 자신의 회사인 (주)한양에 공장부지로 빌려주고 연간 2억∼4억3천만원씩의 임대료를 챙겨왔다는 것이다.
또 대재벌의 무분별한 회사설립을 막으려는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배씨는 「가장납입」의 편법을 사용해 이른바 껍데기회사(Paper Company)를 세우며 돈벌이에 급급했다.
「가장납입」이란 회사설립에 필요한 자본급잔고증명을 만들기 위해 일단 은행에 자본금을 예치시킨뒤 잔고증명을 떼고 즉시 잔금을 빼돌리는 것.
검찰조사 결과 배씨는 은행담보용으로 이용하거나 종합건설업체의 참여가 불가능한 단종공사를 따내려고 「가장납입」 수법을 동원,91년 8월중 1주일사이에 무려 4개의 자본금없는 껍데기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씨는 이밖에 재개발조합장들을 매수,시공중인 아파트의 평당 건설비를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해 부당이득을 챙기는 한편 그 손해를 고스란히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떠넘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각종 탈법행위를 통해 돈을 끌어모은 배씨는 악화일로를 치닫던 회사경영도 아랑곳없이 1백20만달러를 홍콩으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받고 있다.
심지어 배씨는 20대 초반의 두아들을 (주)한양목재 등 3개 계열사의 이사로 허위 등재,1인당 매월 6백만원씩 모두 3억2천여만원의 회사공금을 낭비해온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검찰은 이러한 배씨의 부도덕하고 방만한 기업경영이 부하직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이들 역시 회사공금을 착복하는 등 경영부실화를 초래,한양그룹매각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배씨를 소환할 당시 인금체불로 대기업 총수를 구속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새로운 혐의가 드러날수록 배씨를 엄벌할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는 배씨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냄으로써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산다」는 속설을 깨뜨려 우리사회기업인에게 경종을 울렸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소문이 무성하던 한양의 비자금에 대해서는 『수사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이 수사를 회피,핵심적인 기업 비리는 건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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