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출신이 서우대 교수로-주경야독 만학가 이항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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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막상 임용통보를 받고 나니 아직 얼떨떨하고 저자신도 다소 의외라는 생각입니다. 남들보다 다소 늦은 출발이지만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25일 서울대가 발표한 비서울대출신 임용교수 5명 중 유일한 지방대출신으로 「눈에 보이지 않던 벽」을 허문 화제의주인공 이항 박사(37·수의학).
이씨는 대표적 대기만성형의 노력파다. 3남2녀 중 막내로 5세때 어머니를 여읜 이씨는 중학교 때까지 서울에서 살다 아버지를 따라 경남 하동군으로 내려가게 된다. 고등학교 진학도 집안사정으로 포기, 글자 그대로 주경야독,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혼자 책을 읽으며 검정고시준비를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검정고시에 합격한뒤 83년 진주경상대 수의학과에 진학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염소 등 가축들과 친숙하게 지냈으며 그당시 일었던 축산장려 붐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수의학전공을 꿈꾸게 됐다』고 돌이키는 이 박사는 우연한 기회에 유학의 기회를 맞게 된다.
대학졸업반이던 87년 경상대에 교환교수로 와있던 이정화 교수(춘원 이광수의 딸)가 유학을 주선, 이씨는 그해 9월 미국 필라델피아소재 펜실베이니아대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이 교수의 남편인 인도인 아이엔거 박사의 지도로 이씨는 도미 5년만인 지난해말 법리학박사학위를 땄다.
학위논문은 「웅성쥐 생식기도안의 크리아틴 생합성 및 축적의 조절에 관한 연구」.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분야인 「크리아틴」을 분자생물학적 방법으로 고찰한 논문이 서울대 교수채용심사위원회에서 호평을 받으며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이씨는 당당히 서울대 전임강사로 채용되었다. 미국의 지도교수·동료들은 『활동여건이 좋은 미국에 남으라』고 붙들었지만 자신의 말마따나 「우직한」그는 미련없이 귀국했다.
74년 단과대로 독립한 서울대 수의료대가 홍보부족으로 아직 농대의 일부로 잘못 인식되고있는 점이 아쉽다는 이씨는 『선진국에 비해 아직 나아갈 점이 많은 우리의 수의학을 하루빨리 선진국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다른 분들에 비해 너무 쉽게(?) 임용돼 운이 좋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회경험이 없고 국내사정에 생소한 점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수의과 이문한 교수(47)는 『이 박사의 서울대입성은 앞으론 누구든 기회균등원칙과 연구업적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환영했다.
현재 수원캠퍼스부근 1천7백만원짜리 전세 집에서 대학동창인 부인 배숙희씨(29)와 다섯살난 딸 아사미와 살고있는 이씨는 『만나뵐 은사들도 있고 아직 마무리지어야할 일이 많아 곧 미국에 다녀와야 한다』며 인터뷰를 끝냈다. <봉화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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