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문화에 투영된 「침묵의 형상」추적|미셸푸코 『광기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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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푸코는 광기가 르네상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형예술·문학·철학에 투영되어 현대인에게서 보이고 있는 습관의 다양성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는 주된 원리의 다양성을 섞어버리기도하고, 헝클어뜨리기도 하기 때문에 그의 이 논문은 분석과 종합이 동시에 이뤄지는 작업이다. 작업의 엄밀함 때문에, 그것을 읽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것은 늘 지성에 보답하고 있다. (생략)
이 작업의 독자성은 오늘날까지 철학자나 정신분석사가가 방치했던 소재를 높은 수준에서 철학적으로 재고하려는데 있다. 그의 작업은 인문대 심사위원 앞에서 공개심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 또한 나는 학장에게 출판허가도 신청한다.』
이상의 인용문은 미셸 푸코가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제출한 두 편의 논문가운데 무려 9백43쪽이나 되는 주 논문 『이성과 비이성-고전주의시대에 있어서 광기의 역사』에 대해, 1960년 4월19일 주 논문 지도교수였던 과학철학자 조르주 캉귀렘이 논문심사 및 출판허가를 신청한 보고서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다.
당시만 해도 프랑스에서 국가 박사학위를 방기 위해서는 주 논문과 부 논문 등 두 편의 논문을 제출해야 할뿐만 아니라 특히 주 논문의 공개심사를 위해서는 그것을 미리 단행본으로 출판해야 했다. 더구나 거기에는 박사학위를 수여할 대학의 학장으로부터 출판허가를 받아야 하는 엄격한 사전절차가 요구되었다. 바로 이러한 절차를 위해 지도교수였던 캉귀렘은 앞에서와 같은 신청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푸코는 이 논문을 유명한 갈리마르사에서 출판하려 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광기의 역사』에 대한 공개심사는 1961년5월20일 오후 소르본의 계단강의실을 가득 메운 심사위원들과 청중들 앞에서 그들을 경악시키는 푸코의 다음과 같은 첫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광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시인의 재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광기는 언어의 의미 표시적 조직이나 구조 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순수한 외재성에서 그 존재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시인의 귀에만 들린다고 비유하려 했던 것이다.
광기는 본래 이성의 검열적 언어에 의해서는 결코 객체화될 수 없다. 나아가 그것은 이성 언어의 지평 내에 결코 모습을 나타낼 수 없는 무엇이므로 이성이 그것에 대해 말한다 할지라도 제대로 복원해낼 수는 없다. 광기를 이성의 타자로 전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일이다. 어쩌면 광기의 역사를 논의하는 것조차도 형식논리상 하나의 모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광기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만할 것인가. 이성적 언어에 의해 설명되는 광기가 결코 광기고유의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언제까지 그것의 실체를 미개의 침묵으로만 규정하고 말 것인가. 광기에 대해 이성적 언어를 통해 형상화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그것을 이성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즉 언어적 의미작용의 0(영)도로서, 미개의 침묵으로서 실체화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때문에 푸코는 이러한 침묵의 형상이 이성에 의해, 이성과 함께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분석하는 「침묵의 고고학」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 광기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광기라고 하는 형상의 실재성을 고고학적으로 더듬어 보는 것이다. 「이성의 발언, 광기의 침묵」이라는 대립의 지평이 르네상스이후 어떻게 그 실체성을 갖게 되는가를 밝혀내려 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광기의 있는 그대로의 야생상태는 결코 그 나름대로 복원될 수 없기 때문에 광기를 안고 있는 역사상의 총체, 즉 다양한 개념·제도·법제·치안면에서의 처리와 학문상의 다양한 견해들에 대한 구조론적 연구」라고 생각했다. 광기를 포위하거나 배제하는 고전적 이성의 언어는 어떤 힘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고, 누구에 의해 논의되며 어떻게 쓰여지는가, 또한 그것은 다른 언설과 어떻게 연립하며, 광기를 감시하려는 실천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그는 역사적으로 추적하려 했다.
이것은 결국 이성의 언어란 그것이 이야기하려는 광기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밝혀내는 작업이기도하다. 르네상스 시기만 해도 용인되던 광기표현의 자유는 고전주의 시대(17세기)의 대 감금이 시작되면서 이성이 광기를 배제하는 무서운 역사 속에서 박탈된다. 더구나 18세기에 이르면 광기는 비이성의 다른 형태, 혹은 범죄와 구별되면서 순수한 정신병으로 제도화된다. 광기는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적 언어에 의해 영원히 침묵 당하게 된다.
중세나 르네상스시기까지만 해도 유럽사회는 광기에 대해 관용을 보였고, 이성과 사회 속에 공존하면서 문학을 비롯한 그 밖의 문화현상 속에 자유롭게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권력에 의해 강제되고 비이성의 침묵화로 인해 광기는 마침내 정신의학이라는 이성의 검열에 의해서만 그 자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광인은 자신의 광기로부터 차단되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우리가 광기에 대해 말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광기를 말하는 것과 멀어지게 된다. 청년시절 푸코의 주된 관심분야는 정신분석이었다. 그는 정신분석을 강력한 이론적 무기로 평가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부르좌적 억압에 역사적으로 얼마나 가담해왔는가를 밝히려 했다. 『광기의 역사』가 쓰여지는 이유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이 책은 반정신의학자들에겐 정신분석에 대한 공격무기를 개발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푸코가 제시하는 사회제도로서의 「광기」의 역사성에 대한 통찰은 무의식의 보편성을 내세우는 정신분석 이론가들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광래<강원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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