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보편성이 흔들린다|부트로스 갈리<유엔 사무총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현재 인권개념에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보편성·경제개발·민주주의·유엔을 인권보장을 위한 4대 요소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이 지난 14일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인권회의와 관련해 최근 미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한 글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지난 반세기동안 인권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권의 기초 개념들은 과거만큼 명확하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10년 전에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인권을 국제적 관심분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보편적 인권개념은 현재 문화·정치·종교·민족적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많은 정부들이 인권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편리한대로 규정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나머지 정부들도 식량·주택·건강·교육 등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통적 개념의 인권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48년 유엔 인권선언이 채택된 이래 인권보호의 범위는 계속 확대됐으며, 특히 노예제도·학살·고문·차별대우 문제 등 이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인권개념 역시 개인의 권리에서 민권 및 정치권리로까지 확대됐다. 말하자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다 개발권과 건강한 지구에서 생활할 권리까지 인권에 포함되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정당·언론자유·사법부 독립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각국 정부와 비정부단체(NGO)·인권운동가들이 빈에서 세계인권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 인권의 보호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 즉 국가를 두려워하는 작가, 관료주의자들에 의해 아들·딸들의 장래가 위협받고 있다고 걱정하는 어머니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어떤 방법으로 그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얻어낼 것인가. 나는 여기에서 ▲보편성 ▲경제개발 ▲민주주의 ▲유엔 등 네 가지 요소를 꼽고 싶다.
보편성이야말로 인권제도의 요체다. 이는 주요 인권조약에 모든 나라가 가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요구에서 나왔다. 그것은 또 세계의 심오한 철학이나 종교·문화 등에서 불변의 원리를 담고 있다.
우리는 인권을 억압하는 세력들이 종종 그들의 잘못을 예외주의라는 미명으로 호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누구라도 보편주의를 추구하고, 또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인간의 존엄은 문화와 신조·지위를 떠나 보편성이라는 기준을 필요로 한다.
경제개발도 충분히 인권의 범주로 고려될 만 하다. 언론의 자유는 국민 대부분이 문맹인 곳에서는 별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과거 정치와 인권·경제적 권리의 상호 연관성을 부인했던 국가들도 지금은 이 세 가지의 상호 보강 적인 성격을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권의 보증이다. 사회가 가난하면 할수록 인권에 대한 관심도 떨어진다. 반면 사회가 사회 경제적 발전을 이루면 그만큼 인권도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고 인권을 개발의 다음 순위에 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인권이 민주적으로 보호되는 사회만이 지속적인 개발에 필수요소인 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
개방사회라야만 시민들이 정부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만이 부패나 협박을 은폐하려는 정부의 음모를 폭로할 수 있다. 【정리=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