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미관계(NPT 탈퇴유보 그후…: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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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핵사찰 이행 여부따라/「정치적요구」 일부 수용/북측은 관계개선·회담 정례화 노려/미사일 수출억제·유해송환문제 미서 제기할듯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역사상 최초로 북한­미국간의 공동성명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북한­미 관계가 앞으로 어느 수준까지 발전될 것이냐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공동성명에는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을 대화 상대자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주권의 인정,내정 불간섭 등 북한을 정식 대화의 상대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은 우선 ▲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해야 할 뿐아니라 ▲국제테러 행위를 중지해야 하고 북한내의 인권이 개선되어야 하고 ▲남북대화에 성실히 임해야만 비로소 관계개선을 해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이번 고위회담을 계기로 상당히 후퇴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국제테러문제·인권문제·남북대화 등의 조건을 차치하고서도 핵문제의 투명성만을 놓고 보더라도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실제 얻어낸 것이 없었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한다고 궤도수정을 한 것이다.
미국은 이번 회담이 시작되기전 북한으로부터 명확한 확답을 얻어내기 전에는 결코 타협은 있을 수 없다고 다짐했었다. 즉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수용,남북한간 상호사찰 등 3가지 조건을 이행한다는 북한의 약속없이는 대화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북한이 NPT의 복귀 대신 탈퇴 연기라는 매우 어정쩡한 결과를 얻어내고서도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입장을 후퇴시켰다. 미국이 이러한 후퇴를 한데는 나름의 다급한 사정이 있었다.
북한으로 하여금 최초로 NPT체제를 탈퇴케 방치함으로써 빚어질 국제적 충격을 우선 막아보자는 임시변통적인 조치라는 인상이 짙다.
여기에 북한과 미국의 입장 차이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회담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회담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사찰문제 등을 수용하게 하며 앞으로의 대화의 핵심은 역시 핵사찰의 이행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도 회담결과에 대해 『이번은 핵문제 해결의 첫 발걸음에 불과하며 북한과의 어떠한 협상도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 역시 『북한이 핵확산을 막고자하는 국제적 요행에 따르도록 앞으로도 계속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핵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미국과 북한이 만났을때 과연 미국의 의도대로 북한의 핵사찰 문제만 논의되겠느냐는 점이다.
미국은 앞으로의 회담이 생산적인 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며 북한이 이 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표시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미국에 앞으로는 회담 대표를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회담도 정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담내용도 핵문제에만 국한할 수 없게 되어있다.
북한은 앞으로의 회담이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준비회담으로 유도해 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회담이 그랬듯이 북한은 자신의 핵카드를 북한­미 관계개선에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다.
미국도 북한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이제 다른 「당근」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벌써 미국의 대북한 경제원조가 거론되고 있다.
미국이 앞으로 회담의 초점을 북한의 핵문제에만 집중시키려 해도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다른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결국 이번 회담의 패턴을 보더라도 북한의 요구가 어느 선에서 수용되는 것은 불가피하게 되어있다.
미국은 핵문제를 포함,최근에 북한이 개발한 중거리 미사일의 수출 억제 문제,미군 유해의 송환문제 등을 아울러 다룰 것으로 보인다. 핵사찰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앞으로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동시사찰,팀스피리트훈련의 종식 등이 곧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이 이루어지면 북한은 경제원조,북한­미간의 불가침협정 체결 등을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 공동성명이 북한·미국의 신뢰회복의 첫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미 우리 정부도 북한­미국간의 관계격상을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그러나 북한이 앞으로의 회담을 문제해결이라는 진지한 자세에서 보다 전술적으로 이용하려 할때 그때 가서야 대응하려하면 시간이 늦게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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