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사람을 안쓰는 해로움”(송진혁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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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관포지교로 유명한 춘추시대의 관중은 섬기던 재환공을 보필해 천하의 패업을 이루게 한 역사상 가장 명재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야심만만한 환공이 하루는 관중에게 물었다.
『과인은 불행히도 사냥과 여자를 좋아하오. 장차 패업을 이루는데 해롭지 않겠소.』
『해롭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것이 해롭소.』
『어진 사람을 쓰지 않으면 해롭고,어진 사람을 쓰되 신임하지 않으면 해롭고,어진 사람을 신임하되 소인들을 참석시키면 해롭습니다.』「열국지」
○인재의 낭비 심한 사회
관중의 이런 말은 곧 국가경영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인사가 만사라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보면 국정이 잘되느냐 못되느냐가 사람 쓰기에 달려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인재의 장비가 참으로 심했던 것같다. 분단과 6·25를 겪으면서도 이편 저편을 가른데서부터 그랬고,잦은 정변으로 정권과 함께 무더기로 나가 떨어지는 사람도 많았다. 과거 유정회,공화당 전국구,청와대 특보·비서관 등으로 들어갔던 수많은 교수·학자·언론인·유지들이 지금 다 어떻게 되었는가. 그냥 있었던들 이 사회의 원로·중진이나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될 수도 있었을 법한 많은 사람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함께 주저앉은 사례가 허다했다. 벼슬하던 교수가 대학에 못 돌아가고 전정권의 요직자는 으레 새 정권에서 배척되는 것이다.
이런 세월을 거듭하다 보니 한 분야에서 30년,40년 외길로 전업을 닦고 명성과 덕망을 쌓은 사람을 보기 어렵게 되고 언제부터인가 인물의 왜소화현상,원로가 없다는 말 따위가 자주 나오게 되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개각때마다 사람을 못 구하는 인재난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명성이 있으면 때가 묻었고 그렇다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쓰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민정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김영삼정부는 처음부터 전­노정권 10여년 세월의 요직자는 배제한다는 인선기준으로 출범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인적청산은 더욱 단호해져 12·12,5·17,5·18 관련자는 물론 멀리 거슬러 5·16관련자까지 배제되거나 실세화의 길을 걷는 판이다. 또 그 동안의 사정작업으로 군·관·교육계 등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상처를 입었다.
○국정 곳곳 전문성 부족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과거 청산작업은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해방후 일제를 제대로 청산못한 부담이 지금껏 내려오는 것만 생각해도 나쁜 과거의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사정을 통해 허명위명의 가면을 벗기고 부정·탐욕의 출세자를 응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청산과 사정이 꼭 필요한 것과는 별도로 나라에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은 3천년의 관중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점도 틀림없는 일이다.
오히려 지금의 국가경영은 관중시대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복잡·다양하고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금은 중앙정부의 과장급 하나가 도시계획의 선하나,법령·규칙의 조문 하나를 그르쳐도 나라에 몇조,몇억원의 손실을 줄 수도 있는 시대다. 오늘의 국가정책은 결코 아마추어의 실험대상이 될 수 없다. 최선의 인재·최고의 두뇌가 대통령 주변과 정부에 포진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날 김영삼정부는 과감한 개혁추진으로 유례없이 높은 국민지지를 받고 있지만 국가경영에 있어 과연 이처럼 바람직한 인재들을 포용하고 있는지는 아직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 보면 국정의 여러 분야중 사정작업만이 활기있게 진행될 뿐 경제·교육·환경·교통 등의 정책 각 분야에 있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경제는 여전히 위의 눈치나 보고,사정도 시켜서 하는 일이 자주 나타난다. 정부의 여러 곳에서 전문성 부족의 핸디캡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맘때쯤 해서 혹시 「어진 사람을 쓰지 않은 해로운 일」은 없는 것인지 따져볼 때도 된 것 같다.
혹시 계파가 다르다고 해서,힌때 껄끄러온 관계였다고 해서 「어진 사람」인줄 알면서도 안쓰는 폐단은 없는 것인지,아울러 지금 진용안에 「소인」까지는 아니더라도 2,3류 인물을 참석시키는 일은 없는 것인지 두루두루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데 좋은 사람이 있다면 저럴 수가 없을텐데 하는 일도 더러더러 나타나고 있다. 최근들어 『우째 이런 일이…』라고 할만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사회가 어수선한 배경에는 사람 문제가 없는 것인가. 더욱이 이제는 신한국 건설을 하나씩 착착 진행시켜야 할 때다. 사람을 끌어모으고 팀웍도 정비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판을 잘 짜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신한국건설은 덕담분위기속에 친한 사람들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큰일 위한 포용은 미덕
원래 관중은 제환공의 정적진영에 속했던 사람이다. 일찍이 환공을 활로 쏘아 죽이려다 실패했는데 환공은 그가 천하기재임을 알고는 감옥에서 그를 풀어 과감히 등용함으로써 패업을 이룩했다고 전해진다. 큰 일을 위해서는 작은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대담한 이재등용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고사다.<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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