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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뛴다] 부산 외국인 노동자 인권모임 정귀순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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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새해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강제 추방의 압박 때문에 자살하거나 농성을 벌이는 슬픈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마음의 안식처인 '부산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부산진구 전포2동) 정귀순(鄭貴順.44.사진)대표는 "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결국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점을 모든 사람들이 가슴속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鄭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던 1996년 이 모임을 만들었다.

체불.폭행 등 갖가지 어려운 상황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일에 인생을 바치고 있다.

처음엔 혼자 활동했으나 이제는 직원이 5명으로 늘었고 자원봉사자도 1백 명을 넘었다.

정 대표는 "기업주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싼 임금으로 부려 먹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그들을 경제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어.현지 언어를 잘 구사하는 이들과 함께 장래에 그들의 국가에 진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문제는 법과 제도 탓에다 기업주의 잘못된 인식 등이 겹쳐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는 불법 체류자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을 촉구할 계획이다.

또 외국인 근로자들이 좋은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어한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올 때는 한국의 앞선 기술을 배우려는 꿈을 가지고 온다"며 "그러나 막상 한국에서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3D 업종에 종사하고 만나는 사람도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무심코 내뱉는 반말이나 욕설이 그들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며 "기업주와 한국인 근로자들이 말과 행동을 좀 더 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가 외국인 이라는 이유로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근로자로 갔을 때 임금 면에선 독일인과 똑 같은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분야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등의 지역 경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한국에 대한 홍보 역할도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동남아에 가 보면 이제는 '누구 누구의 삼촌이 한국에 갔다 왔더라'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며 "한국에서 돈을 벌어간 그들은 삼성.LG 등 한국 제품을 사는 구매자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그들의 문화를 한국에 전하는 전령사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부산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부산이 수도권 기업에 비해 임금은 낮지만 사람들이 정이 많아 살기 좋다고 여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용백 기자

***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활

부산.울산.경남에 약 3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조선족이 가장 많으며 나머지는 주로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필리핀.네팔 등 동남아인이다.

남성들은 주로 자동차 부품회사.사출 회사.수산물 가공회사에 근무한다. 여성의 경우 봉제.섬유 등 직종에 근무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 부산울산지회가 1백69개 업체 외국인 연수생 8백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산.울산.양산지역 외국인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월 2백56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월 2백26시간)보다 30시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 근로시간은 40시간 이하 40.1%로 가장 많았으며 1백 시간 초과가 19.3%나 돼 근무 연건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국 1년차인 연수생은 93만5백87원, 연수를 끝낸 취업생은 1백6만4천9백67원 등 월 평균 1백만원 안팎의 연수수당을 받고 있다.

휴일에 필리핀 근로자들은 성당을, 인도네시아.파키스탄.방글라데시인은 이슬람사원을 많이 찾는다.

*** 정귀순 대표는

▶ 1960년 부산 출생
▶ 1976년 부산 동여고 졸업
▶ 1983년 부산대 건축학과 중퇴
▶ 1992~1995년 노동자교육협회 대표
▶ 1996년~ 부산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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