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있으면 준법 없으면 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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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앙일보 6월8일자(일부지역 9일)독자의 광장에 문창진씨가 투고한 글을 읽었다. 그 글은 교통 경찰관이 좌회전 U턴 신호를 위반한 문창진씨에게 범칙금 통지서를 발급하였으며 문창진씨는 함정단속을 하는 경찰관에 대하여 불만이고 그것이 개혁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는 내용이다.
운전을 몇 년 한 사람은 아마 대부분 한 두번 함정단속에 걸린 경험이 있을 것이고, 범칙금 통지서를 발급하는 교통경찰관에 대하여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냈으리라. 단속을 하려면 보이는데서 단속을 할 것이지 왜 꼭 숨어서 함정단속을 하느냐고 말이다.
네거리 앞에서 U턴을 할 때는 좌회전 신호에 U턴을 하든가, 빨간 신호 때는 바로 앞 횡단보도에 청색 등이 켜질 때 U턴을 하도록 되어 있으며 단순히 빨간 신호에 U턴을 하는 것은 신호위반이다.
문창진씨의 경우 상대편 차들이 신호 대기중이라도 네 거리의 빨간 신호등에서 U턴을 하는 것은 명백한 신호위반이고 이것을 교통신호 위반으로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은 하나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단지 경찰관이 숨어서 있었다는 것인데 교통경찰관이 운전자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해서 숨어 있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한번 거꾸로 생각해보면 교통경찰관이 보이면 교통법규를 지키고 안 보이면 법규를 위반해도 되는데 재수 없이 교통경찰관이 거기에 숨어 있어 단속에 걸리고 범칙금을 물게 되었으니 운전자들 생각에 교통경찰관이 나쁘다는 말이 된다. 정말 그런가. 교통규칙이란 것이 단속하면 지키고 단속하지 않으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경찰이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여 시민들에게 고통만 준다고 하나, 시민의식의 수준이 단속하면 규칙을 지키고, 단속 안 하면 안 지키는 정도라면 그 잘못은 시민에게 있는 것이지 경찰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창진씨의 생각처럼 개혁이란 거창한 것도 아니고 경찰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시민 스스로 작은 질서 지키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법과 규칙을 지키고 공정치 하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다. 경찰이 단속을 하건 안 하건 모든 운전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질서를 잘 지키면 경찰이 숨어서 단속을 하거나 말거나 문제될 것이 없고 숨어서 단속을 한들 실적을 올릴 수도 없을 것이다. 임재훈<경희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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