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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반독점법에 대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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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삼성전자·하이닉스에 이어 대한항공이 반독점법(Antitrust Law) 위반으로 미국 정부에 3억 달러(약 2768억원)의 벌금을 낸다. 올해 대한항공은 지난해보다 큰 수익을 올렸지만 벌금 탓에 2000억원 상당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도대체 반독점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존 D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조직해 기업 규모를 확대하고 경쟁사를 악의적인 방법으로 몰락시켜 전국 정유시장을 독점했다. 건전한 경쟁이 사라진 석유 시장에서 독점기업은 가격을 마음대로 주물러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철강·담배·설탕 시장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만연하자 미 행정부와 의회가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반독점법이다. 수십 년 간격으로 제정된 셔먼법, 클레이튼법, 연방거래위원회(FTC)법 등은 공정거래와 소비자 보호를 목표로 한다. 이 법들은 공정거래에 위배되는 기업 간 계약, 공모, 음모를 금지한다. 또한 거래나 통상을 독점하거나 독점하려고 기도하는 것도 중대한 범죄로 간주한다. 즉 가격 담합, 경매가 조작, 시장 분할, 끼워 팔기, 경쟁상품 취급 저지 등은 모두 위법이며 민형사상의 처벌을 받는다.

 미 법무부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비타민, 건설, 예술품 경매 등 방대한 분야의 카르텔을 적발해 약 20억 달러의 벌금형을 내렸다. 20여 명의 기업 중역들에게는 징역형을 명령했다. 2004년부터는 벌금과 징역형의 상한선을 대폭 늘렸으며, 9·11 테러 이후 제정한 애국법도 반독점법에 관한 감청을 허용해 힘을 실어 주었다. 미국의 간판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조차도 미국 내외에서 15년 이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독점 소송에 휩싸여 있는 상태다.

 반독점법 운용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사면’조항이다. 카르텔 기업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 첩보작전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치밀한 수법과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한다. 이를 와해시키기 위해 미 법무부는 카르텔에 가담했다 하더라도 가장 먼저 자진신고하는 기업·개인에게는 형사처벌을 면제해 준다. 이러한 이간계가 먹혀 들어 신고가 속속 접수돼 예상치 못했던 거대 조직이나 밀약의 실체가 드러난다. 이번에 대한항공도 카르텔에 참여한 유럽 항공사의 자진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미국 기업들은 반독점 준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원들을 지속적으로 교육한다. 무심코 나눈 말, 관례나 문화라고 믿었던 것도 불법의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반독점법상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 지갑이나 서류가방에 지니고 다니게 할 정도다.

 앞으로 우리 기업들도 보다 철저하고 치밀한 법률자문 시스템 구축, 전 직원에 대한 지속적인 반독점 준수 프로그램 교육, 로스쿨과 경영대학원의 반독점법 교육 강화 등을 통해 반독점법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또 우리 기업들이 자사의 반독점법 위반 사실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사면조항을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미국 반독점법 피해는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이 반독점법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에도 연간 수십 개의 글로벌 기업에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으며 보다 엄격한 반독점법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도 전인대 상무위원회 주도 아래 반독점법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의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잘 만들고 잘 파는 것 못지않게 국제법을 잘 알고 잘 지켜야 돈을 버는 시대를 맞이했다. 법을 모른다고 해서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Ignorantia Legis Neminem Excusat).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미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