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공약 이행 '합격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각종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광역지자체장들은 약속을 얼마나 이행하고 있을까.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상임 공동대표 김영래 아주대 교수, 강지원 변호사)가 6일 지방선거 1년을 맞아 16명의 특별시.광역시장, 도지사의 '공약 이행 중간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매니페스토 운동 참여를 선언하고 공약 대결을 벌였던 시장.지사들에게서 공약 이행 계획서와 실적을 제출받은 뒤 한국지방자치학회.한국지역경제학회, 시민단체 인사들로 55명의 평가단을 구성해 점수화한 것이다.


평가 결과에 따르면 16개 광역단체장은 100점 만점에 모두 90점대로 일단 '공약 이행을 무난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점수는 공약으로 제시했던 사업 건수에서 미이행 공약 건수를 뺀 뒤 이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것이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98.7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박준영 전남지사 97.2점, 오세훈 서울시장과 허남식 부산시장이 97점이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유문종 사무총장은 "지난해 본격화된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당선된 단체장들이 공약 이행 상황을 관심있게 점검했기 때문에 높은 점수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 사무총장은 그러나 "이번 평가는 4년 임기 중 주로 연구 용역, 사업 준비 단계에 집중된 1년차 평가인 만큼 공약의 이행 여부는 남은 3년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약을 이행하는 시작 단계에선 모든 지자체가 합격점을 보이고 있지만 지자체별로 선거 때의 약속과 달리 정책화 단계에서 빼거나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슬그머니 공약(空約)'도 드러났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1400억원을 들여 2008년부터 한 달에 100명을 수용하는 외국어 마을 조성을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 추진 계획에선 389억원을 배정해 방과 후 영어학교를 운영하고 도비 유학생 등을 선발하는 사업으로 축소 변경됐다.

도내 주민자치센터 314곳에 장애인을 순차적으로 채용, 장애인에게 일자리 8000개를 주겠다던 김태호 경남지사의 공약은 한국 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확인 결과 3000개로 줄어 있었다. 김범일 대구시장의 '대구 살리기 펀드 1조5000억원 조성' 공약 역시 취임 후 3000억원 조성으로 목표가 축소됐다. 서울시에 경제진흥공사를 설립한다던 오 서울시장의 공약은 사라졌다. 오 시장 측은 "취임 후 검토 과정에서 기존 조직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별도 조직을 설립하지 않는 대신 경쟁력강화본부와 통상산업진흥원에 역할을 맡겨 공약의 취지를 이행했다"고 해명했다.

도내 31개 주요 공원에 쓰레기 종량제 봉투 자판기를 설치해 쓰레기 투기를 줄인다는 김문수 경기지사의 공약도 도청이 제출한 공약 이행계획서엔 포함되지 않았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지난 선거 때 중구 광복동 6만9000여㎡의 용두산 공원에 민자를 유치, 복합문화시설을 설치하는 등 재개발을 약속했지만 역시 공약 이행계획서엔 포함되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대형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결과적으로 공약(空約)이 된 경우도 있다. 박성효 대전시장 등이 내걸었던 '자기부상열차 시범 노선 유치'는 건설교통부에서 인천시로 결정하며 무산됐다.

안상수 인천시장이 1조원을 들여 동인천역 일대의 상권을 재편해 복합 문화상업지구로 만들겠다는 공약은 현지의 일부 상인과 주민의 반발을 시가 조정하지 못해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지적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내년 7월 진행될 2년차 공약 이행 평가에선 이번엔 제외됐던 주민 만족도 평가까지 포함할 예정이다.

채병건.남궁욱 기자

◆매니페스토(Manifesto)=후보자가 정책 공약을 발표할 때 목표.우선순위.절차.기한.재원의 다섯 요소를 구체적인 수치 형태로 명시해 유권자가 선거 전엔 쉽게 검증하고, 선거 뒤엔 쉽게 평가할 수 있게 하자는 '참공약 실천운동'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