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교수 성희롱 주장 근거 없다|미 보수진영 대반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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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클래런스 토머스 미연방대법원 판사는 지난 91년 상원인준을 어렵게 통과한 뒤로 언론과의 접촉을 극력 피하면서 철저히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했다. 이는 당시 문제가 됐던 애니타 힐 교수의 성희롱 주장을 둘러싼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 위해서는 대중을 멀리하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최근 당시 상원청문회의 증언내용을 해부한 책 『애니타 힐의 참모습‥공개되지 않은 이야기』(The Real Anita Hill:The Untold Story, 프리 프레스 간)가 발표돼 토머스 판사는 본의 아니게 세인의 관심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언론인 데이비드 브록이 쓴 이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토머스로부터 성적 희롱을 당했다고 한 힐 교수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다는 것이다.
브록은 힐 교수가 재직하는 오클라호마 주립대 학생과 동료교수들의 말을 인용, 힐이 성희롱을 들고 나온 것은 순전히 보수성향인 토머스의 대법원 판사 임명을 막을 목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힐 교수를 학생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무능한 교수로 평가하고 있다.
힐 교수는 토머스 판사가 자신을 희롱했다고 주장한 균등고용기회위원회(EEOC)를 떠나 오클라호마대학으로 옮긴 뒤에도 토머스 판사에게 오클라호마대학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돼 있다. 브록은 이런 사실들을 들어 힐 교수의 증언이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책이 출간되자 보수진영은 토머스 판사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환영의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힐 교수는 토머스 판사와의 대결에서 판정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여권운동의 영웅으로 부상하면서 여권운동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여성들이 의회에 진출한 것도 여권운동에 힘입은 바 크다는 분석이다.
힐 교수는 지난해 배너티 페어지선정 「올해의 여성」으로 뽑혔으며, 미자유인권협회·미변호사협회·미형사변호사협회 등도 힐의 용기를 높이 치하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도 『직장에서 기회균등과 윤리를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은 힐 교수에 신세를 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가 수만달러를 지급하고 힐 교수의 강연회를 열었으며, 지금도 강연을 요청하는 대학이 줄을 서고 있다. 지난해 EEOC에 접수된 직장 내 성적 희롱관련 불평도 91년보다 45%나 늘었으며, 여자대학등록학생수도 10%나 늘었다
이처럼 미사회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가운데 나온 『애니타 힐의 참모습』은 보수대 자유주의자들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보수주의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변화를 가속화하는 촉매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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