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국제적 음악가로 발돋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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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쿠바의 재즈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29)가 미국의 쿠바봉쇄 벽을 허물고 세계적인 음악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아바나에 살리라(Live in Havana)』, 『로맨틱』 등 음반으로만 알려졌던 그가 지난달 14일 뉴욕 링컨센터, 지난달 27일부터 4일간 동경 하라주쿠(원숙) 퀘스트에서 국제공연 진출의 꿈을 이룬 것이다.
루발카바의 음악세계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미 지난 85년 쿠바 재즈제 때 미국인 트럼핏 연주자 고 디지 길레스피를 만나면서부터. 뉴욕에서 명성을 날리던 길레스피가 「탄환같은 손기술에서 배어나오는 섬세한 감성」에 깜짝 놀란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음악의 영역을 초월,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처럼 하나가 됐다. 그는 서방에 나의 음악을 알려준 위대한 프러모터였다.』 스승 길레스피에 대한 루발카바의 회고다.
그러나 루발카바의 미국공연은 지난달 14일에야 성사됐다. 미 법무부의 특례로 지난 1월 스승 길레스피의 장례식에 참석, 재능을 선보인 뒤 음악팬들의 줄기찬 연주요청에 힘입어 이뤄진 것이다. 미국 언론들이 그의 뉴욕공연을 주목하는 것은 그 자체의 성황 이외에 미국이 대쿠바 경제봉쇄의 연장선에서 취해왔던 쿠바음악인에 대한 미국 내 개인공연금지조치를 12년만에 허물었다는 점이다. 빌 클린턴 정권의 국제문화활동 개방조치의 첫 결실인 셈이다.
그는 뉴욕공연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람바(쿠바의 민속음악), 볼레로(스페인 춤곡) 등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다. 이들을 나의 것으로 만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존레넌의 「이메진」 등 록음악을 소화해 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발카바의 음악세계는 에반스, 파데렙스키, 페터슨 등 쿠바출신 음악가들의 연주기법에 케이트 자레트의 독특한 연주방식이 가미된 것이다. 또 바하, 라벨, 라흐마니코프,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뿐 아니라 록·발라드 음악 등 어느 음악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천부적 자질의 소유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쿠바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최후의 문화자산』이라는 찬사에도 불구,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남아 있다. 미국에 망명중인 동포들로부터 『위대한 음악가가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피델 카스트로 독재정권의 총애를 받으며 정권 선전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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