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뿌리 가진 당당한 세계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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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세계한인입양인대회 참가자들이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 등 국가별로 팀을 만들어 축구 월드컵을 열었다. 3일 과천 경마장에서 벌어진 예선전에서 덴마크팀 응원단이 응원을 하고 있다. 세계 15개국에서 모인 입양인들은 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한복 패션쇼.전시회.학술대회 등을 통해 모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사진=최금복 인턴기자]

3일 오후 2시 과천 경마공원 축구장. 킴 피요나 플라스(32.여)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벤치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조금 전 마친 축구경기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붉게 상기돼 있었다. 플라스는 거주지(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따라 네덜란드팀 소속으로 뛰었다. 상대편은 시애틀.포틀랜드.뉴욕 등에서 온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동서부해안팀. 경기 결과는 3 대 2로 플라스팀의 승리였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골은 직접 못 넣었지만 우리 네덜란드팀이 이겨서 기분 좋네요"라고 말했다. 두 살 때 입양된 플라스씨는 한국말은 "예" "아니요" "감사합니다" 정도밖에 할 줄 모른다. 한국 이름은 이은하. 그의 이름 가운데 '킴'은 양부모님이 친어머니의 성을 따서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플라스는 1일 서울에서 개막된 제4회 세계한인입양인대회에 참석하려고 30년 만에 처음 모국땅을 밟았다. 이날은 대회 참가자들이 네덜란드.덴마크.프랑스.스웨덴.미국팀 등 7개 팀으로 나눠 미니 월드컵 축구경기를 펼쳤다. 팀별로 여성 선수가 2명씩은 꼭 뛰도록 했기 때문에 필드하키 클럽팀 선수이기도 한 그는 기꺼이 선수로 출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려운 형편이었던 어머니가 해외입양기관에 맡겼대요. 마침내 한국에 오게 돼 정말 기뻐요. 아직도 제가 진짜 한국 사람이란 생각은 안 들지만 말이에요. 밥보다 감자가 더 좋거든요, 하하."

플라스는 또 한번 밝게 웃었다. 그는 "세계 곳곳에 나 같은 한인 입양인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한때는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지만 이젠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 편집자인 그는 "저처럼 좋은 외국인 양부모님을 만난 경우엔 두 나라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으니 럭셔리한 인생 아닌가요?"라며 농담까지 했다.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마리아 벤츨(24.여)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쿨'하긴 마찬가지. 친부모님도 이미 만났다는 그는 5남매의 막내였던 자신을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형편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무엇보다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즐겼다고 했다. 이날 축구행사에서도 그는 빨간 운동셔츠에 하얀 주름치마를 입고 자신이 속한 덴마크팀을 열심히 응원했다.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된 세계한인입양인대회가 5일 막을 내린다. 팀 홈(50) 대회 준비위원장은 "입양인들을 동정어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없다"며 "그들은 이미 다문화를 가진 세계인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세계한인입양인대회=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 회장 팀 홈)의 주관으로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 열렸다. 대회는 부정기적으로 열린다. 한국에서는 2004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열려 전 세계 15개국 650여 명(가족 포함)이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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