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학원강사 '학력 조작' 사실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서울 서초동 S학원에 다니는 천모(중2)군은 학원에서 사회과목을 배웠던 선생님이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천군은 "내가 지금까지 짝퉁 선생님한테 배웠대요. 너무너무 화가 나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학력을 '뻥치기'한 학원 강사들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 대학 졸업증명서를 위조해 강남 학원가에서 활동해 온 강사들이 경찰에 대거 적발된 것이다. S학원도 그중 하나다. 경찰은 가짜 졸업장을 돈을 주고 산 것으로 보이는 70여 명의 리스트를 확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 노량진 고시촌과 목동 학원가의 강사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학원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부 학원에서는 강사들의 출신 학교에 졸업 여부 확인을 시도했지만 대학 측이 확인해 주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가짜 졸업장 사서 학원에서 강의=서울 송파경찰서는 3일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대학졸업장을 위조해 학원강사로 일해온 혐의(사문서 위조)로 김모(37.여)씨 등 전.현직 학원강사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19명의 학원강사에 대해서는 같은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 등 6명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위조 브로커 차모(26.지명수배)씨와 접촉했다. 50만~150만원을 건네고 원하는 대학의 졸업증명서를 택배로 받아 출강하는 학원에 제출했다. 홍모(33)씨 등 6명은 컴퓨터를 이용해 졸업증명서를 직접 위조했다.

1992년 경기도 소재 2년제 D대학 기계정밀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송파구 일대에서 미등록 수학 강사로 활동했다. 지난해 학원장이 "교육청에 등록해야 한다"며 졸업증명서를 요구했고 같은 해 4월 차씨를 통해 한양대 수학과 졸업증명서를 만들어 제출했다.

김씨처럼 적발된 강사들은 야간대학이나 전문대를 졸업하거나 대학을 중퇴하고도 유명 대학을 마친 것처럼 가짜 대학 졸업증명서를 만들어 학원 취업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브로커 차씨의 계좌를 확보해 조사한 결과 50만~150만원을 보낸 70여 명의 리스트를 확보, 이들이 학위 위조 대가로 돈을 건넸으리라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강남.강동 교육청에서 제출받은 학원강사 3200명의 학위를 해당 대학에 의뢰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 왔다. 경찰 관계자는 "3200명에 대한 확인 작업이 거의 끝났다"며 "서울대 및 연.고대 출신 강사들은 3월 경찰청에서 수사를 벌인 데다 교육청에서 꾸준히 확인 작업을 해 온 까닭에 이번 수사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노량진 고시촌과 목동 학원가의 강사 중에서도 위조 학력을 내세운 이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내사를 벌이고 있다. 공무원이나 교원임용 학원이 몰려 있는 노량진 학원가에는 현재 재직 중인 강사만 8000여 명에 달한다.

◆학원가 비상=노량진 학원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노량진 일대에서 공무원 영어시험을 강의하는 김모(38)씨는 "고시학원의 성격상 수강생이 강사의 학벌을 보고 몰려들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법학 전공이 아닌데 법대 졸업자로 이력을 적는 등의 '전공 위조'는 종종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원 측은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강사들의 학력을 조회할 방법이 없다"며 "얼마 전 강사들의 출신 학교에 졸업 여부를 확인했다가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가짜 졸업증명서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권호.박수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