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여건/통한비용 독일보다 많이 들것(통독이 한국에주는 교훈: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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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 경제격차 동서독보다 큰탓/국민 담세율 상승·해외차관 확대 불가피/북 변화 주시하며 사회·경제협력 넓혀야
독일통일은 일종의 사회혁명이었다. 통일이후 동독인들은 모든 분야에 걸쳐 혁명적 변화를 경험해야 했다.
동·서독인들은 그동안 자유로운 상호 방문과 TV시청을 통해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동독인들은 서독이 동독을 식민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통일에 대한 그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두세대후쯤 융합
동독인들은 동·서독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독의 정신·생활수준이 서독의 그것에 이르려면 앞으로 두세대가 지나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통일은 한 나라가 오랫동안 분단된 상태에서 적대관계를 유지해왔어도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으며,또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이 성취될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줬다. 분단국가인 한국이 독일의 예에서 크게 고무됐음이 당연하다.
그러나 양국간에는 유사성만큼 차이점도 많다. 동서독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국가간 공적관계를 계속 유지해왔으며,민간차원에서도 최소한의 연락과 서신왕래가 보장돼 있었다.
이에 반해 남·북한은 처절한 전쟁을 치렀으며,약간의 공식접촉을 제외하곤 국민간 접촉은 거의 허용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폐쇄사회다. 그들은 세계의 변화와 남한의 발전상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통일을 위한 노력은 곧바로 북한에 정치·사회적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독일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다. 인구면에서 남한은 북한의 두배인 데 비해 서독은 동독의 네배였다. 또 북한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남한의 약16%수준에 불과한 반면 동독의 1인당 GDP는 서독의 25%수준이었다.
○북한경제난 심각
다시 말해 통일에 있어 서독이 질 부담은 상대적으로 큰 것이 아닌 반면 남한이 져야할 부담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이 당면한 경제난은 매우 심각하다. 교역량은 지난 90년 47억달러이던 것이 91년에는 27억달러로 떨어졌다. 과거 북한은 구소련과 중국에서 매년 수백만배럴의 원유를 구상무역형태로 도입해왔으나 지금은 경화부족으로 불과 수만배럴의 원유만 공급받게 됨으로써 극도의 에너지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구조면에서 남·북한의 차이는 동·서독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북한은 동독과 달리 주로 구소련·중국과 원자재를 구상 무역방식 위주로 교역해왔다. 따라서 통일이 된 다음 수출시장 상실로 북한 산업이 입을 피해는 현재 동독이 겪고 있는 것만큼 심각하진 않을 것이다.
임금문제에 있어서 동·서독간 격차는 남·북한의 그것보다 더 컸다. 통일후 동독의 임금과 사회복지 수준이 서독 수준으로 껑충 뜀으로써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으며,지금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독일에 비해 아직 수준이 낮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점진적 접근 필요
이상을 종합해 볼 때 남한은 경제적으로 아직 통일비용을 감당할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상태에서 통일은 국민조세부담률의 대폭 상승과 대규모 해외차관 도입이 불가피하다. 또 통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주변국들로부터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그들에 원조해줄만큼 넉넉한 입장은 아니다.
우리는 한국통일에 관해 논의할 때 몇가지 가능한 상황전개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먼저 김일성주석의 후계자가 정책을 대폭 수정할 것인가,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중 어느 쪽이든 통일을 지연시킬 것이다.
다음은 북한의 엘리트집단 가운데 일부가 지도체제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다. 이 경우 결과는 전혀 예측불능이다. 또 하나는 북한경제가 완전 파탄지경에 이름으로써 남한에 흡수되는 것이다. 이같은 과정은 단계적·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북한체제가 사유재산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최근 추진하기 시작한 합영법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남한은 이같은 북한의 움직임을 잘 포착,북한과 사회·경제협력을 확대함으로써 결실을 거두도록 해야 한다.
○군사충돌 막아야
궁극적으로 남·북한은 통일한국이 어떤 모습을 갖춘 나라가 돼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된 비전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균형잡힌 점진주의다. 그러나 점진적 접근은 상황이 역전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그 의미가 있다. 만약 상황역전의 위험이 있으면 일대 전환적 접근이 더 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일의 전환기에 양측간 군사적 충돌을 막는 것이다. 이같은 시기를 거치면 드디어 양쪽이 하나로 합쳐지는 시기가 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함께 중요한 것은 통일에 우호적인 대외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독일통일은 특수하고 우호적인 대외여건속에서 이뤄졌다. 소련에 개혁적인 지도자가 등장해 서방과의 관계가 극적 개선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도 주변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통일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한반도의 정치·경제에 연관된 모든 국가들이 통일과정에 참여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펴야 할 것이다.<정리=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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