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활발히 토론하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과정 뿐 아니라 운용방식이 경직화하고 있다. 신경제가 당초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성의 발휘를 내세웠던 것을 감안하면 요즘 경제부처내에서는 너무 토론이 안되고 있어 염려된다.
경제정책이 소수에 의해 결정되고 움직이던 시대는 지났다. 다수가 참여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경제가 잘 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경제부처의 관료들 사이에는 소극적인 자세가 만연되고,활발한 토론이나 부처간의 협의 보다 형식적인 보고에 더 신경을 쓴다고 한다. 사정파동 때문에 몸을 사리는 심정은 이해되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하면 곤란하다.
경제운용은 절대로 소수인의 의사대로 억지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왜 자본주의경제가 시장기구를 신성시하고 그 기능의 정상화 여부로 경제의 성패를 가늠하고 있는지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시장이라는 추상적인 기구는 그 자체가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의사와 이해관계가 교차되고 각자의 욕망이 정보로 공개되어 조정되는 곳이다. 다시 말해 활발한 토론과 의사소통이 시장기능의 기본 전제조건인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경제정책은 그것의 형성과정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것이다. 특히 실무를 맡은 경제관료들간의 자유로운 언로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신경제가 추진과정에서 본격적인 가속이 붙음에 따라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최근 뚜렷한 이유없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책임자가 경질되고 경제기획원의 고위관료 인사풍문으로 표면화되었다.
위축된 분위기는 경제관료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사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일련의 경제정책이 충분한 내부조정 없이 너무 의욕과 선명성이 지나쳐 거친 형태로 발표되었다가 백지화되기도 한다.
대기업과 금융산업개편과 관련한 기업분할명령권이나 은행대출금의 주식전환 등도 부처간의 토론이 덜된 상태고,노동정책도 다른 경제부처나 내부 실무관료와 충분한 토의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계의 공동건의안도 중도에 무산되었다. 경제계의 건의를 채택하고 않고는 정부 당국에서 최종결정할 일이지만 자유롭게 정책건의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경제연찬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경제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한다. 위로부터의 주입보다 좀더 활발한 토론과 의견수렴을 기대한다.
언로가 막힌 경제정책은 결국 경제관료들의 보신주의만 팽배하게 만들고 이런 경직적 분위기의 피해는 토론으로 인한 피상적인 불협화음의 부정적인 측면보다 훨씬 클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