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수부대 5월14일부터 투입준비(5·18 진상을 캔다:5·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육본 상황일지서 드러나/전교사 트럭 31대 7여단에 지원 도착/당시 운전병도 증언
80년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들이 5·17 전국비상계엄확대가 발효되기 최소한 4일전부터 광주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새로운 군관계기록과 군관계자의 증언이 나왔다.
이같은 증거는 88년 광주특위청문회에서 『80년 5·17 계엄확대조치와 육군본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광주에 공수부대가 투입됐다』는 당시 모든 계엄군 핵심지휘관들의 증언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자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이 신군부의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이뤄졌다는 일부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본사특별취재반이 최근 입수한 「육군본부 작전상황일지」에 따르면 전북 금마지역에 주둔한 7공수여단은 5월18일 0시를 기해 발효된 비상계엄령 4일전인 14일 이미 전남북계엄분소인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의 차량지원을 받아 출동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80년 5월 계엄하의 육군작전상황을 기록한 이 자료는 89년 국회광주청문회 당시 국회에 제출됐으나 이 부분이 주목받지 않았다가 최근 본사 특별취재반의 정밀검토과정에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광주시위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경찰력으로 진압이 가능하다는 전남도경·31사단 관계자의 상황보고에도 불구하고 공수부대가 사전 투입된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으로 신군부의 「사전시나리오설」과 부합하고 있다.
작전상황일지에 따르면 전교사 885수송자동차중대 소속 2.5t 트럭 31대가 14일 오후 5시5분 전교사를 떠나 광주∼호남고속도로∼금마인터체인지를 거쳐 이날 오후 7시30분쯤 7공수여단의 주둔지인 전북 익산군 금마면에 도착했다.
7공수여단 2개대대 병력 6백80여명은 전국비상계엄확대조치가 발표되기 직전인 17일 밤 10시37분 이들 차량에 탑승,금마를 떠나 다음날 새벽 1시10분 전남대에 도착했다.
당시 885수송자동차 중대 운전병으로 이 공수단의 수송작전에 참여했던 문모씨(35·당시 상병)는 본사취재반과의 인터뷰를 통해 『14일 오후 수송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20여명이 탑승할 수 있는 M35A1수송트럭 30여대가 7공수여단이 주둔해있던 금마로 가 3일동안 묵은뒤 17일밤 광주로 출발했다』고 증언했다.
문씨는 또 『금마출동 2∼3일전 중대장의 긴급 차량정비지시가 있어 곧 대규모출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는 신군부의 공수부대 광주투입결정이 최소한 실제투입 6∼7일전에 세워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윤흥정 당시 전교사사령관(중장)은 본사 취재반에 『공수부대의 사전출동 준비사실을 몰랐음은 물론 광주투입사실도 공수부대가 전남대·조선대에 주둔을 완료한 18일 오후 보고받았다』고 말해 공수부대의 사전투입계획이 신군부 핵심세력에 의해 은밀히 추진됐음을 암시했다.<특별취재반><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