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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 부부」 사건 계기로 본 미사법 체계|주법-연방법 이원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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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법의 관점에서 본 미국은 51개의 나라다. 50개의 독립된 주법에다 연방법이라는 또 다른 법제로 구성된 2원적 구조를 가진 거대한 복합체다. 미국 내에서 행해지는 범죄 행위는 특정주의 법 또는 연방법의 규율을 받는다.
이른바 「미국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개의 법 체계는 서로 독립된 것이다. 살인·강도·강간 등 일반 형사 범죄는 원칙적으로 주법의 관할이고 연방 법원은 연방 헌법에 의해 위임된 사항에 한하여 범죄를 규정하고 처벌할 권한이 있다. 문선명 목사가 연방 소득세 탈세 혐의로 연방 형무소에서 복역했고 노소영·최태원 부부는 법정 통화의 신고에 관한 연방법을 위반하여 선고 유예와 몰수형을 병과 받았다.
연방 범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대배심 (또는 기소 배심)이 공소를 제기한다. 검사는 제기된 공소 사건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나 경미한 죄에 대해서는 검사가 단독으로 공소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와는 달리 기소된 피고인은 검사측과 「죄질의 협상 (Plea Bargaining)을 할 수 있다. 고문·변호인의 참관 없는 신문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므로 과학적 수사를 해야한다. 이러한 수사 기관의 애로 때문에 중한 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이 보다 가벼운 죄에 대해 자백하면 중한 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치는, 악역과 악인간의 「신사 협정」이다.
중한 죄에 대해서는 배심 재판을 하는 것이 원칙이나 죄질 협상을 통한 자백이 있으면 배심 재판의 필요가 없다. 유죄로 확정된 피고에 대한 양형 선고에 있어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판사는 광범한 재량권을 가진다. 범인의 처벌 그 자체보다는 교화 후의 사회 복귀라는 점에 비중을 두기에 선고형이 무겁더라도 가석방 등을 통한 조기 석방의 여지가 많다. 특히 주목할 것은 집행유예 등 비구금형을 주관하는 교정 기관이 원칙적으로 행정부의 소속이 아니라 법원의 보조 기관으로 편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법원의 임무는 단순한 형의 선고에 그치지 않고 교정행형에까지도 간여한다는 것이다.
노소영 부부에게는 연방법전 제18장 3651조 내지 3653조에 근거하여 신고 의무를 위반한 금액 전체의 몰수와 1년간 선고 유예형이 내려졌다. 「Probation of one Year, Suspending Sentence)의 형이 우리법의 집행유예에 해당하느냐 아니면 선고 유예에 해당하느냐, 논란이 있다. 유예 기간을 정했다는 점에서는 집행유예에 가까우나 형의 경중과 그 효과를 감안한다면 보다 가벼운 형인 선고 유예에 가깝다. 이들 부부는 유예된 1년이 경과하면 형의 실효를 신청할 수 있고 전과 기록은 말소된다. 검사가 불만을 가진 가벼운 형에 대해 판사는 한미간에 범인 인도 협정이 없는데도 자진하여 출석한 점, 엄청난 금액의 손실과 국제적 망신으로 이미 충분한 처벌을 받은 점을 정상 참작 사유로 들었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다시 처벌받을 것도 고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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