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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 서대문을 조직책 요청 응락”/김재기외환은행장 사퇴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금융계선 돌연한 변신에 갸우뚱
어렵게 따낸 비중 큰 은행장 자리를 불과 한달여만에 내놓고 정계에 뛰어들겠다고 나선 김재기외환은행장(56)의 거취에 금융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행장은 14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사임이유를 밝혔으며,이어서 이임식까지 가져 자신의 신변을 정리했다.
김 행장은 『형(고 김재광 전 국회부의장)이 오랫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한 서울 서대문을 지구당조직책을 맡아달라는 민자당측의 의사타진이 있어 그쪽으로 방향을 정했으며 민자당에선 다음주 말께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행장의 말대로라면 그는 재산공개때 물의를 빚고 탈당한 임춘원의원이 맡고 있던 사고지구당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평상시 원하던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뚜렷한 이유없이 은행장 몇명이 옷을 벗은 것을 본 금융계는 김 행장이 당장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사고지구당 조직책을 맡기 위해 시중은행장 자리를 내놓는다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하다며 의아해하는 표정들이다. 김 행장 자신도 그동안 당장 정계로 진출할 뜻은 없으며 이번 외환은행장직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해왔었다.
김 행장의 퇴진을 굳이 금융계 사정바람에 연결시켜 보려는 쪽에서는 우선 사정활동이 본격화되면서부터 김 행장이 「구설」의 대상으로 올랐음을 다시 끄집어 내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감사원의 국책은행 감사를 통해 문제가 된 행장급은 아직 처리되지 않은 인물이 몇명 있다면서 김 행장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정치인으로 변신하겠다는 김 행장의 생각은 상당히 오래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는 여느 은행원들과는 달리 평상시에도 존 메이저 영국 총리 등 은행원 출신으로 정치인이 된 유명인사 이름을 거론하면서 이제 한국에서도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금융인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정치지향적인 인물」로 인식돼 왔다. 주택은행 지점장·부장시절 야당 의원들과 즐겨 어울려 정보기관의 내사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같은 동국대 선후배인 고 김동영의원,최형우·김영구·정재철민자당의원과 가깝다.
김 행장은 외환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긴뒤 의욕적으로 활동했던 주택은행장 시절과는 사뭇다르게 갑자기 「조용히」 지내 거꾸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행장의 퇴임배경을 둘러싸고 나도는 여러가지 이야기의 진위는 결국 그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하느냐로 판별될 것 같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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