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과 함께 걸으며 한국 문화를 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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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은 최근 치매환자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 85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리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노인 인구의 5%인 10만 명이 치매환자다. 그만큼 치매환자 관리가 중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 유학생들이 치매노인을 돕는 자원봉사활동을 펼쳐서 눈길을 끈다.
고려대 한국어문화교육센터 외국인 유학생들은 작년 7월에 봉사동아리를 만들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을 방문하고 있다. 봉사를 통해 언어와 문화를 함께 배우려는 취지로 시작된 활동은 해를 넘기면서 지원하는 학생 수가 많아졌고, 이번 학기에는 일본, 중국, 인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한국어 실력이 중급정도 되는 15명의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학생들을 인솔하는 한국어 강사 유순영씨는 “노인들이 다른 봉사자들보다 특히 외국 학생들에게 마음을 쉽게 여는 것 같다. 학생들도 낯선 땅에서 만나는 낯선 노인들을 대하기 어려웠을 텐데, 어르신들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한다. “또래 학생들 외의 한국인을 만나고 싶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기억 못하던 할머니들도 이제는 반갑게 알아봐주셔서 보람을 느낀다” 7개월째 봉사활동을 해온 기타다 타이키(27·일본)군의 소감이다.
학생들은 주로 노인들의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실내에서 게임과 노래 부르기 등을 함께하는데 노인들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 ‘남행열차’, ‘소양강 처녀’ 등의 노래가사를 미리 외워서 부르는 모습에서 정성과 진심이 느껴진다. 학생들은 또 움직임이 불편해서 상대적으로 운동량이 부족한 노인들의 손을 잡고 걷기 운동을 유도한다.

2004년에 일리노이 대학연구팀은 ‘규칙적으로 걷기 운동을 하면 뇌기능이 향상되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던 논문에 따르면 걷기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피가 뇌로 유입되는 작용을 도와 기억력과 판단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또한 걷기 운동은 계획을 세우고, 기억력을 활용하고, 판단을 내리는 등의 활동을 하는 뇌의 전두엽과 측전두엽에서 수행하는 실행조절 기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이상택 박사(66·샘안양병원 이사장)는 그의 저서 <건강장수의 비결>에서 “뇌혈관성 치매 초기증상인 환자에게 꾸준한 걷기운동과 자발적 생활태도를 갖도록 한 결과, 증상이 놀랍도록 개선된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치매의 종류에 따라 거동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신체적 퇴화가 진행된 노인들은 딱딱한 보도를 걷기 어렵다. 때문에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과 학생들은 야외활동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까운 공원 잔디밭 처럼 걷기 편한 곳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신 학생들은 노인들이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자리를 옮길 때마다 옆에서 부축하면서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의 할아버지 한 분은 치매 합병증으로 근육이 경직돼 거동이 불편했지만 봉사동아리 학생들이 걷기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운 이후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고 한다. 자하나 히로코(23ㆍ일본)씨는 “방문할 때마다 어르신들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 기쁘다”며 고국에 돌아가는 내년까지 꾸준히 활동하겠다고 한다.

박혜민 인턴기자 hyeumi@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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