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의 성폭력 폐해 “불감증”/이정민 생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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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1일 국회 법사위에서는 대학교수·변호사·판사 등 법조계인사,여성단체연합의 성폭력 특별법제정 추진특위 관계자,여성계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폭력대책관련,입법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최근 성관련 범죄가 급격히 늘어나고(82년 인터폴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미국·스웨덴에 이어 세계3번째 성범죄 발생국) 그 방법이 날로 흉포화·다양화해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마련된 자리여서 진술인들뿐 아니라 방청객들도 시종 진지한 표정이었다.
공청회에 임하는 의원들도 자리를 비우지않고 끝까지 발표내용을 경청하는 등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줘 책임있는 의정을 실현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돼 오후 5시가 넘도록 계속된 공청회는 민자당이 내놓은 「성폭력 예방 및 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민주당의 「성폭력 행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국민당의 「성폭력 행위 등에 관한 법률안」,그리고 여련이 내놓은 「성폭력 대책에 관한 특별법」 등 법사위에 계류중인 4개 법률안을 놓고 6명의 진술인 발표로 이어졌다.
최영애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보다 강력한 처벌이 주어지는 새로운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처벌규정의 구성요건에 대한 검토 등 법제정과 관련한 다각도의 분석과 다양한 견해가 제시돼 모처럼 마련된 공청회장을 열기에 휩싸이게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서로 마련된 질의응답시간에 보여준 해당 법사위원들의 질의는 이날의 공청회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질의를 벌인 대부분 의원들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의 입법취지와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듯한 발언들로 일관. 강신옥의원은 『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 법이 없으면 보호받지 못할 실체적 사건은 무엇인가』고 물었고,정상천의원은 『특별법을 제정하면 성범죄가 예방되거나 그 수가 줄어들 것으로 확신하는가』고 질의,의원들의 성폭렵법 입법취지는 물론 여성문제에 대한 수준이하의 인식을 노출시켰다. 또한 박희태의원은 『법은 최후·최악의 수단이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모두들 법이면 뭐든지 다 되는 줄아는 입법 만능에 빠져있다』고 질책까지 했다. 한마디로 특별법제정을 위한 공청회장인지,저지를 위한 자리인지 의심하게할 정도였다.
7시간이 넘게 계속된 이날 공청회 자리를 나오면서 『제2,제3의 김부남사건이 나와야 정신을 차릴 사람들』이라는 한 방청객의 분노섞인 항의를 뒤로하며 기자는 특별법 제정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이 가로막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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