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만에 열린 '금녀의 골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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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금녀(禁女)의 집'이 열린다.

여자 브리티시 오픈이 2일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의 올드 코스에서 개막한다. 골프의 발상지로 알려진 이곳에는 골프의 전통을 지키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있으며 최고 권위의 디 오픈(The Open)을 27차례나 개최한 골프의 성지다.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R&A 회원들은 올드 코스를 '올드 레이디'라고 부르지만 정작 올드 레이디는 금녀의 집으로 만들었다. 여자는 R&A 클럽하우스에 들어갈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와 개는 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있었다고 한다.

여자가 이곳에서 골프를 치지 못한 것은 아니다. 1500년대 중반 스코틀랜드 여왕인 매리 스튜어트가 올드 코스에서 골프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여왕이 클럽하우스에 들어갔는지는 확실치 않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2003년까지 모두 아홉 차례 여자 아마추어대회를 열었지만 그때도 R&A 클럽하우스는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600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드디어 열린다. 올드 코스가 올해 여자프로대회인 여자 브리티시오픈을 처음 개최하면서 여성들에게도 클럽하우스를 개방한 것이다. 클럽하우스를 개방한다는 것은 콧대 높은 R&A가 여자 골퍼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선수들은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경기한다는 사실에 이미 흥분돼 있다. 이곳에서 열린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이건 엄청난 일이다. 올드 코스의 역사를 생각할 때 대회가 열리는 것은 여자 골프의 큰 발전이다. 나는 그곳에서 모든 순간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리(CJ)는 상금이 더 많은 에비앙 마스터스 출전을 포기하고 이 대회를 준비했다. 로라 데이비스(영국)는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주차장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코스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회를 대비해 올 3월 이곳에서 연습라운드를 한 폴라 크리머(미국)는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올드 코스는 이번 대회에 6638야드의 파 73으로 세팅된다. 남자 대회를 치를 땐 파 72지만 로드 홀로 유명한 17번 홀을 453야드의 파 5홀로 만들었다.

한국 선수들은 30여 명이 여자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해 올드 코스 첫 우승을 노린다. 성지 순례가 아니라 골프의 고향을 정복하러 가는 것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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