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북한목죄기」안된다/문창극 워싱턴특파원(특파원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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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언론서 사교집단과 비유 주목/돌발행동 우려… 신중대응 필요
2주전 미텍사스주 웨이코에서 다윗파라는 사교집단이 경찰과 대치 끝에 스스로 방화해 20여명의 어린이를 포함,80여명이 집단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데이비드 코레시라는 젊은 사이비 교주를 지도자로 외부와 접촉을 끊은채 중무장에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던 이들은 경찰의 포위속에 두달 가까이 버티다 경찰이 행동을 개시하자 마침내 스스로 불을 지른 것이다.
이 사건은 미의회로 비화돼 청문회까지 열렸다.
주요 쟁점은 미연방경찰이 이들을 진압하는데 판단실수가 있었느냐는 점. 당시 현장 진압책임자는 이들이 집단자살까지 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불이 난지 30여분이 지나서야 소방차를 출동시켰다고 증언한 바 있다. 미의회는 사교집단의 집단심리와 정서를 충분히 파악,대응했어야 했는데 경찰이 이들을 정상인과 같으리라고 판단,작전을 벌이는 바람에 죄없는 어린이들이 대거 희생됐다고 추궁했다.
실제로 청문회에서 이들이 폐쇄적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출생,성장한 어린이들은 수세식화장실의 사용법도 몰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7일자 사설에서 북한을 이 사교집단과 비교,유사성을 지적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폐쇄적 사회에다 김일성이라는 교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주민들로 구성된 북한과 웨이코 사교집단의 제반여건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무장공비로 내려왔다가 귀순한 김신조씨가 북한 체제를 비슷하게 설명한 적이 있다.
북한주민들은 김일성을 기독교의 하느님으로,김정일을 예수로 생각한다고 보면 정확하다고 김씨는 비유했다.
사실 지금까지 남북대화등 북한과 접촉해오면서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광신적 요소를 수없이 많이 체험했다.
그러면서 남북 문제가 우리 민족의 문제라는 점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를 눈감아 오거나 모르는체 피해왔다.
냉전구조의 한 역작용으로 대학가에서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며,북한에 대해 좋게 말해야 지식인 행세를 하는 듯한 풍조도 있었다.
정부 역시 이러한 풍조에 휘말린 감이 없지 않았다.
북한의 핵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민족문제라는 점때문에 ▲한반도 비핵화 선언 ▲남한내 핵철수등 우리가 양보해 줄것은 다 해 주었으면서도 얻은 것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이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양보해 주고 도와주면 같은 민족인데 북한도 따라오지 않겠느냐는 식의,다분히 낭만적인 사고가 탈이었다.
지금까지 북한의 행동양식은 국제적 관습이나 법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을 포함한 여러가지 논의와 방책이 있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것은 북한이 웨이코의 사교집단과 같이 정상적 사고나 행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합리적 사고와 계산을 바탕으로 한 북한과의 통상적 협상이나 흥정이 효력을 발휘할지도 미지수지만,그렇다고 성급하게 경제제재등 압력을 가해 목을 죄면 웨이코집단처럼 집단자살 행위를 감행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핵문제등 북한과 연관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실체를 먼저 인식한후 냉정하고도 신중한 방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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