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국 일본의 「국제공헌」생색 씁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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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금 일본은 신장 2m의 경제대국, 그러나 2.5m가 되면 국제결혼도 불가능해진다. 오늘 일본은 세계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산정륙(가지야마 세이로쿠) 자민당 간사장이 최근 한국의 전경련 격인 일 경단련 회원사 신입사원을 모아놓고 행한 강연내용 중 일부다.
일본경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 이 대목을 접하면서 기술대국·산업대국인 오늘의 일본을 절묘하고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과 함께, 만감이 교차됐다.
왜냐하면 이 말은 얼핏 기술대국인 일본의 자만심을 나타내는 말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부국이 됐으니 저개발국가들을 위해 공헌해야한다는 자비심의 표현으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일본은 기초과학 무임 승차국·안보 무임 승차국 등 오랜 세월 세계 각처로부터 받아온 따가운 시선을 인식한 듯 근자에 들어 이 같은 뉘앙스를 지속적으로 풍겨왔다. 일본 정부의 정책발표나 언론의 보도내용 중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국제공헌」과 「지구환경」이라는 단어다.
과학기술대강이 환경문제·에너지문제·식량문제 등 지구적인데 문제의 해결을 통해 안정된 국제질서구축 및 남북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조화된 공존을 주장하고 있는가하면, 긴급제언은 일본은 돈으로만이 아니라 「진심에 기초한 가슴으로」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해야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정부주도의 연구개발과제를 봐도 국제공헌측면에서 대외개방의 가속화를 겨냥하고있다.
통산성이 이 달부터 시작한 환경·에너지관련 「뉴 선샤인계획」이나 국내산업경쟁력강화를 노려 추진했던 「대형·차세대과제」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일본의 바람직한 「발상의 전환」을 바라보면서 과학기술분야에 종사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한일간의 기술이전문제에 있어서 일본측이 보이고있는 덜 성숙된 대도다.
점점 넓어지는 한일간의무역적자폭의 해소책으로 기술이전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일본측은 기술이전이 산업계간의 문제이지 국가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을 서운하게 하고있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이고 원대한 공헌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까이 있는 현안을 소홀히 넘기지 않는 것이 더욱 값지고 국제사회가 일본에 기대하고있는 바가 아닐까.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과 대좌하는 한국 측의 태도일 것이다.
말로써 국제공헌을 공언하고 나선 일본으로부터 그것을 실천토록 하는 묘안과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들이 공언하고있는 국제공헌 동참론에 의거해서 일본의 태도변화를 유도해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한국을 유린했던 그들의 과거를 빌미로, 무작정 떼쓰듯 기술이전과 일본의 협조를 요구할 때는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장재중(kist동경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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