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매물 홍수 견뎌내야 할 고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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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18면

김광기 기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팔아 치우고 있다. 정말 대단한 기세다. 6월 중 3조500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더니, 이달에는 4조5000억원어치를 팔았다. 27일 하루에만 8500억원어치를 처분했다.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셀 코리아(Sell Korea)’냐 아니냐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셀 코리아’가 맞다. 외국인들은 최근 한국 주식을 유독 많이 처분하고 있다. 그러곤 그 돈을 중국·인도·동유럽·남미 등 다른 신흥시장으로 돌리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가. 한국 경제에 뭔가 큰 문제가 생겨서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기대 이상으로 큰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한국 시장에 감사하며 떠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제2, 제3의 한국이 될 시장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외국인이 떠나면 한국 증시에 큰 구멍이 생기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 어차피 언젠간 떠나야 할 손님이었다. 외국인들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증시의 안방을 차지하며 호령해 왔다. 증시의 외국인 비중(시가총액 기준)이 3년 전 43%나 됐다.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핀란드나 헝가리 같은 소국(小國) 말고는 이런 시장이 없다. 주요 선진국 증시의 외국인 비중은 20%대다.

이제 외국인들을 건넌방으로 모시고,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안방을 되찾아야 한다. 국내에도 돈이 넘쳐 해외펀드 투자 붐까지 일고 있지 않은가. 한국 증시의 외국인 비중은 현재 35% 선까지 낮아졌지만, 앞으로 30% 선 아래로 더 내려가는 게 정상이다.
우리는 떠나는 외국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어려울 때 국내 주식을 집중 매입했다. 지금 수백%의 수익을 챙겨 나가고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한 데 따른 정당한 보상이다. 그들은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던 증시에서 특급 소방수 역할도 해냈다. 만약 외국인이 팔지 않았다면 주가는 지수 2000을 훨씬 넘어 고삐 풀린 듯 내달렸다가 큰 후유증을 낳았을 수도 있다.

앞으로 한국 증시는 지수 3000과 5000을 넘고 1만까지도 도달하는 대장정을 펼쳐야 한다. 물론 한국이 소득 3만 달러, 4만 달러를 넘는 선진 경제로 발돋움하고, 기업들의 수익이 쑥쑥 불어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성장 과실이 우리 투자자들에게 좀 더 많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선 외국인에게 넘어간 주식을 계속 돌려받아야 한다.
때마침 그들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재미를 봤다며 주식을 내놓고 있지 않은가.

당장 외국인 매물 때문에 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딛고 넘어야 할 ‘눈물의 고개’다. 외국인 주주 비중이 낮아지면 기업들도 적대적 인수·합병(M&A) 부담을 덜고 투자와 수익 을 늘리는데 더욱 매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주에도 외국인들의 매물 공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다만 주가가 떨어진 만큼 그 강도는 다소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들이 싼값에 던지는 우량주 중에서 호재가 있는 종목들을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항공사와 여행업체들의 주식이 그렇다. 내년 7월부터 한국인들의 미국행 비자가 면제되면 미국 방문객 수가 두 배로 폭증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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