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남편 한 사람으로 끝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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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살구색 손수건을 꽉 쥔 손이 입가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검은색 원피스로 감싼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 지 이틀째. 고(故) 배형규 목사(42.작은 사진) 부인 김희연(36)씨는 슬픔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27일 오후 경기도 분당 피랍가족 대책위 사무실에서 언론 앞에 나섰다. 탈레반을 향한 간곡한 호소문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무테안경 속 눈 위로 번지는 눈물을 꼭꼭 누르며 끊어질 듯 이어 간 호소문에서 김씨는 "희생자는 남편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라며 "고통스러운 지난 일주일을 지내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인지 느꼈습니다"라며 흐느꼈다. 이어 "피랍자 가족들이 이미 충분히 겪고 있는 고통이 더 이상의 슬픔으로 깊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늘에 있는 남편도 남아 있는 22명의 피랍자가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계속적 노력과 미국.아프간 정부의 협력을 계속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호소했다.

길지 않은 호소문이었지만 한마디 한마디마다 울컥 눈물이 솟아 다 읽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어 30분가량 취재진의 질문에도 응했다. 감정이 복받쳐 답을 내놓지 못할 때에는 배 목사의 형 신규(45)씨가 대신했다. 아홉 살 딸에게 아빠의 죽음을 어떻게 알렸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생일날 가장 큰 선물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다고…(했다)"라고 답하곤 끝내 오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피살된 고 배형규 목사의 부인 김희연씨가 27일 피랍자 석방을 촉구하는 유가족의 호소문을 발표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슬픈 소식을 전해 들으셨는데 현재 심정은 어떤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함)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한 번만 더 (남편을) 만났으면 좋겠다."

-딸은 아직 모른다는데 어떻게 전하겠는가.

"어제 얘기를 해 줬다(입술을 꽉 깨물고 한동안 얘기 못함)."

-아직 아홉 살밖에 안 돼 설명해 주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날이 아빠 생일이었는데 (울먹) 제일 큰 선물을 받았다고, 아빠가 가장 큰 선물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평소 배 목사는 어떤 분이셨는가.

(배신규씨)"남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었다. 제가 형이지만 집안에 일이 있을 때 동생한테 항상 물어보고 결정할 정도였다."

-몇 년 전 폐질환으로 생명이 위독한 적이 있었다는데.

(배신규씨)"폐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유육종이라는 병이었는데 의사가 2개월간 약을 먹으면 치료된다고 했다. 활동을 못할 정도도 아니었고 생명이 위태롭지도 않았다."

-장례 일정은 어떻게 되나

(배신규씨)"빈소를 내일부터 분당 서울대병원에 차리기로 했다. 언제 유해가 도착할지 확실치 않은데 도착 일을 기준으로 3일장을 치를 계획이다. 교회장으로 치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 일정은 교회 장례위원회에 위임하고 따르기로 했다."

-호소문을 발표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배신규)"사실 저희도 마음이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을 저희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도 결과가 많이 진행되는 것 같지 않아 먼저 희생된 유가족으로 나섰다. 이번 희생은 배형규 목사만으로 족하다, 더 이상 이런 희생자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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