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산책 (44) 시설물 주변 바닥이 도시의 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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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보도와 시설물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이 사전에 이뤄지지 않아 시설물 설치를 위해 보도블록을 들어내는 일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바닥도 시설물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 않아 설치 이후 보도블록의 들뜸●1, ●3과 기울어짐 현상이 일어납니다. 또 관계 법령과 시설물 설치지침에는 바닥 면에 시설물을 결속하는 기술적인 사양과 규격만 언급돼 있을 뿐 미관이나 마감 처리에 대한 기준은 없습니다. 결국 시설물은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바닥과의 접합 방식은 거친 상태 그대로 노출됩니다●2. 공공 시설물은 견실한 시공과 엄격한 사후 관리가 요구되지만 각종의 설치 상황과 가로 환경이 고려되지 않은 채 생산되고 설치되는 점도 문제입니다.

공중화장실이나 공중전화와 같이 다소 큰 면적을 필요로 하는 시설물의 경우 바닥을 고르고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를 생략하고 대신 바닥판을 설치●4해 장애인이나 노약자의 접근을 어렵게 합니다. 시설물과 보도블록 사이로 먼지와 오물이 쌓이고 덮개 없이 노출된 결합 부위는 빗물이 고여 쉽게 녹이 습니다.

세계의 선진 도시들은 바닥을 평평하게, 시설물은 견고하게 시공합니다. 또 시설물 설치 부위의 보도블록을 정교하게 절개해 바닥 면에 수공예적으로 짜맞추 듯 설치합니다●5, ●6, ●7.특히 버스정류장.화장실.전화 등의 시설물은 바닥 면이 보도와 수평을 유지하고 높이 차가 없도록 하는 무장애(barrier free) 설계●8를 원칙으로 합니다.

우리 주변의 가로는 거친 형태의 시설물, 보도에 적당히 설치된 시설물로 가득합니다. 거칠고 비위생적인 장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시민의 정서는 자신도 모르게 황폐해져 갑니다. 이제 시설물과 바닥 면의 만남도 디자인의 일부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공공 시설물의 완성은 도시의 표면과 어떻게 만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미끈한 바닥 면과 깨끗한 만남은 도시 디자인의 기본입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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