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정치인의 민자 입당/이상일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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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자당사 앞에서는 당원들의 시위가 있었다. 경기 김포­강화에서 올라온 당원 20여명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더니 얼마후에는 충북 제천­단양지역의 당원 20여명이 나타나 성난 목소리를 질러댔다.
『대선때 실컷 부려먹고 이제와서 버리겠다니 토사구팽 아니냐』 『어제의 적을 동지로 받아들이라고 하니 자존심이 용납 못한다』….
이날 민자당에는 국민당 출신 무소속의원 8명이 입당했다. 시위는 그래서 일어났다.
소요를 우려했음인지 이날 오전 무소속의원 입당환영식에서 황명수사무총장은 『나도 3당합당후 지구당 핵심요직을 민정계로 채웠었다』면서 『기존 지구당 당원들을 정으로 대해 마찰이 없도록 하라』고 화합을 강조했다.
민자당이 당내 반발과 진통을 무릅쓰고 서둘러 무소속을 영입한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이날까지 발등의 불이었던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의장직 사퇴건을 매끄럽게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길게는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정책을 국회차원에서 적극 뒷받침하기 위해 각 상임위까지 안정과반수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풍토나 정치앞날을 생각할때 민자당의 무소속영입은 개운찮은 구석이 있다.
먼저 이번 일로 기회포착능력이 뛰어난 후조정치인들이 여전히 대접받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철새 정치인들의 발호가 우리 정치풍토의 큰 병폐중 하나였고 특히 지난해 총선이후 이 현상이 매우 심해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욱이 이번에 입당한 사람들중에는 과연 본뜻을 아는지도 몰라도 신한국건설을 주창하며 「애면글면」(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온힘을 다하는 모양) 당의 실력자에게 줄을 대려고 진동걸음을 걷고 다니는 등 철새성을 철저히 드러낸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인사들이 과연 김영삼정권이 내세우는 개혁에 걸맞은 이미지를 풍길지 의문이다.
또하나 산뜻하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은 민자당의 태도다. 민자당은 지난 대선때 무소속이나 다른 당소속의원을 영입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버리고 박 전 의장건 처리를 위해 무소속을 서둘러 영입했다.
여기서 과거 머릿수로 밀어붙이던 권위주의적 여당의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같아 여간 찜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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