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반도체·철강 등 수출늘어(신 엔고시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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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일 수입 많아 무역수지 “빠듯”/시설확충 등 경제체질강화 시급 경제전문가들은 85년 9월∼88년 1월의 1차 엔고에 이은 이번 신엔고가 우리 경제에 일단 도움이 될것으로 보고있다. 이미 2월이후의 엔고를 반영해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상품의 수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92년 4·4분기의 무역실적을 토대로 따져볼때 엔화가 10% 절상되면 일본이 아닌 제3국에 대한 우리의 무역수지는 연간 10억달러가 개선되지만 대일본 무역수지는 7억∼8억달러나 나빠져 전체적인 무역수지 개선효과는 연간 2억∼3억달러가 될것이라고 예측했다. 무역협회는 전체적으로 수출이 8억3천만달러 늘어나는 한편 수입은 3억9천만달러 증가에 그쳐 4억4천만달러의 무역수지 개선효과를 낼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의 엔화강세에 따른 무역수지 개선효과는 지난 1차 엔고 때보다 훨씬 적으리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우선 엔화로 지급하는 수입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일본과의 무역수지는 더욱 나빠진다. 1차 엔고당시 10%를 넘었던 세계교역신장률이 올해는 3%내외에 그칠 것이며 우리의 수출구조상 가격 변화에 덜 민감한 중화학제품의 비중이 커졌다는 것도 더 불리해진 상황이다.
1차 엔고때는 TV를 비롯한 가전제품 등 우리의 수출주력상품이 엔화절상률만큼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해 재미를 보았지만 이번에는 그같은 가격경쟁력의 우위를 누릴만한 우리의 상품이 없다. 자동차·철강제품 등이 일제와 경쟁할 수 있지만 기술의 격차가 큰 상태라서 한계가 있으며,섬유·완구·신발 등 경공업제품은 동남아와 중국이 경쟁상대라서 별다른 이득을 보기 어려운 형편이다.<표참조>
또 엔고가 우리 경제에 수출증대같은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에서의 수입이 많은 우리 형편으로선 수입제품의 가격이 곧바로 국내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서민가계에 주름살을 지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반기이후 경제활성화 시책의 효과가 본격적인 투자수요증대로 나타날 경우 엔화강세로 인한 국내물가 압박이 더욱 커질수 있다. 따라서 또다시 엔고에 들떠서는 안된다고 걱정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우리는 1차 엔고시절의 3저호황을 우리 경제의 허약한 체질을 단련하고 사회간접자본시설을 늘리는 등 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호기로 삼지 못하고 해외여행이나 다니고 꼭 들여오지 않아도 되는 물건을 수입해다 쓰면서 「삼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고」말았다. 남는 돈으로 땅투기나 해대 부동산값만 올려놓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그후 몇년이나 고생해 이제 겨우 거품을 빼놓았는데 다시 또 스스로의 노력이 아닌 엔고라는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형편이 조금 피는 반짝효과를 본다고 해서 자칫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노력을 소홀히 할까 더 걱정이다. 이제 겨우 꺼져가는 우리 경제의 거품을 다시 부풀려 부동산 투기나 과소비를 조장한다면 모처럼의 엔고는 도리어 우리에게 「극약」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신엔고도 우리 하기 나름에 달려있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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