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재경부 ‘M&A 엇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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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금융감독원이 포이즌 필(독소조항)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의 도입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는 M&A 방어 장치를 강화하는 게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전홍렬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가 상법이나 자본시장통합법의 개정이 필요한 적대적 M&A 방어 대책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며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요구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포이즌 필’과 같은 방어 장치의 도입 필요성이나 적합성 여부를 연구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이나 다른 기업과 동맹을 하고 상호 주식 보유(백기사)를 통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며 “특히 상장사들의 자사주 보유 규모가 42조원에 달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은 현행 제도만으론 기업들이 M&A를 방어하기 어렵고, 방어에 나서더라도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며 제도 보완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딴 목소리다. 권오규 부총리는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여름 포럼에서 “일본이 최근 M&A를 규제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는 자본의 원활한 이동을 막는 것”이라며 “M&A 규제를 현재보다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우수한 경영진과 경영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자극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M&A 활성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최근 적대적 M&A 방어 대책으로 ‘포이즌 필’을 허용했으며, 350여 개의 상장사가 이를 도입했다.

 이에 앞서 일본은 2005년 황금주(주요 의사결정에 대해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 제도도 도입했 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부와 금감원이 엇박자를 보인다는 지적이 일자 전 부위원장은 “당장 포이즌 필과 같은 M&A 방어 장치를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라 법 개정 수요가 생길 때를 대비해 자체적으로 연구·검토해 보겠다는 의미”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한국증권연구원 노희진 연구위원은 “기업의 부담을 덜어 주는 적절한 수준의 M&A 방어 장치 마련은 필요하다”며 “그러나 부실 기업과 경영주의 퇴출을 막아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이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표재용·김준현 기자

◆포이즌 필(poison pill)=적대적 M&A 위협에 직면한 회사의 주주들이 각종 비용 지출을 늘리는 것과 같은 특별 권한을 행사해 공격자 측이 기업 매수에 성공해 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갖게끔 유도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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